아버님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김정미
2020.03.23
조회 96
사정이 있어 어머님과 떨어져 홀로 사시는 아버님 집에 처음 방문 했을 때 너무나 깔끔한 집안 모습에 아버님의 호감도는 올라갔고, 밥을 하려고 쌀통을 열었을때 하얀 쌀에 잡곡이 섞여 있는 걸 보고는 아버님의 대한 신뢰도 급 상승했었죠.
그렇게 저에게 좋은 인상을 주셨던 아버님이 좋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둘째 아들이었던 신랑도 아버님께 싫다. 라는 거절의 표현 한마디 안하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님은 그런 저희가 참 편했었나 봅니다.
언제고 큰아들 막내아들을 제치고 저희 집만 오셨고, 한번 오시면 한달을 계시기도 하고, 그래도 저는 싫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아버지였고, 아버님의 대한 호감도가 좋았었기에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은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던 아버님이셨기에 갈비는 기본이고, 닭, 돼지 각종 고기 반찬을 대접을 했습니다.

무더운 어느날 오후 아버님께 별미를 드리고자 육수를 내어 시원한 냉면을 드렸습니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뿌듯했지요.

그리고 댁으로 돌아가신 후 큰 형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 너 면만 드렸다며?" "네? 무슨 말이에요?" " 아버지가 니네집 가서 면만 먹고 왔다던데"
언제나처럼 각종 고기 반찬을 대접하고 점심으로 드렸던 면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와전 되어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오해를 풀었습니다.

그런일이 그 후 계속 생겼습니다.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을 하고 누워 있었을때 갑자기 오셨습니다.
몸이 많이 아팠지만 식사를 드려야 했기에 시장을 가서 밑반찬은 사오고 메인 요리만 제가 했습니다.
큰형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반찬을 다 사다먹는다며 신랑은 그게 괜찮은지 아무 말도 안한다며....
신랑이 제가 아프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는데....

팔에 깁스를 하고 있던 날에도 갑자기 오셨고, 깁스한 손으로 차려 드린 식사를 드시며 아버님은 "에구 손은 많이 아프냐? 그손으로 뭘 또 이런걸 차렸니?" 라고 걱정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아버님은 큰댁에 백프로를 다 채우지 못한 저의 말씀을 전하셨고,
그때마다 큰형님은 그 얘길 저에게 전달을 했습니다.

아버님께 정중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버님! 혹시 제가 부족하거나 모자른게 있으면 큰형님댁에 말씀하지 마시고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더 잘할게요."
아버님은 "야야야 니가 얼마나 잘하는데, 나는 너 나쁜점 얘기 하나도 안했다. 걱정마라"
그리고 가시면 큰형님께 전화가 옵니다. "야! 넌 왜 그런 얘길 해서 나만 혼나게 하냐?"
너만 알고 있으라고 한 얘길 왜 작은애한테 전해서 날 망신 주냐며 큰형님께 노여워 하셨답니다.

막내아들이 둘째를 낳았는데도 거긴 가보시지 않고 저희집에만 며칠씩 계셔서
"아버님 막내 아들 손자 보러 안가보세요? 시간도 많으신데 한번 들르세요. "
이말이 큰댁에는 "작은 며느리가 이제 자기집 오지 말고 막내집 가라 한다." 이렇게 왜곡되어 전해졌습니다.T.T

조금씩 저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그런 말들이었기에...너무나도 속상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랑이 "미안해..니가 조금만 이해 해 줘" 라며 안절부절...
하는 모습에 그래도 남편의 아버지이기에 마음을 다스렸지만 서운한 마음까진 어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냥 할 도리만 하자! 더 애쓰려고 하지 말자." 어차피 욕먹는거 나자신을 보호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아버님을 제 마음속에서 밀어내었습니다.

생글 생글 웃었던 제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조근조근 말벗 해드린다고 꺼낸 말이 아버님이 곡해하여 전하시니 말 수도 적어졌습니다.
식사만 차려드리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수동적이 되었습니다.
그 말들을 전하는 큰형님 내외분이 아버님보다 더 미웠습니다.
차라리 전하지 않았다면 제앞에서만은 웃으셨던 아버님의 모습만을 기억 하고 알고 있었을테지요.
아버님이 저희집에 오셔서 큰댁, 막내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저희 부부는 일절 전하지 않았습니다.
큰댁도 그랬더라면 지금의 제가 아니었겠지요.
며느리로써 19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버님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현실보다, 미래보다 과거와 마주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누구냐? 하며 엉뚱한 말씀을 하시고, 하루에 몇번씩 영상통화를 누르시고,
티비 여행 홈쇼핑을 보고 여행을 가신다며 짐을 싸서 나오시는 등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하셨습니다.
신랑에게는 수십번의 전화를 하시며 큰아들이 돈을 훔쳐갔다. 큰 며느리가 나를 갇웠다.라는 등의 말씀을 하시고, 신랑은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냐며 언성을 높이고,,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저기...혹시 치매 아니실까? 내가 좀 찾아봤는데 치매 증상과 일치하는게 너무 많다. 자세히 검사를 해보는게 어때요?"
아버님은 치매 진달을 받으셨고
남편은 쁜 와중 수십통의 전화가 와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셔도 더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그것을 묵묵히 다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아버님의 거꾸로 흐르는 시계에 맞춰 함께 뒤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서운했던 마음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게 들고...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통화를 해서 저를 못알아 보시고 다른 사람 이름을 말하시면 그분이 되어 말벗이 됩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이지만 아버님의 시계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옆에서 저희의 시간도 함께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잘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저희 신랑이 천천히 흐르는 시간에 지치지 않도록 용기 주세요.

모두 다 힘든 지금 모두가 조금만 잘 버틸 수 있도록 신승훈님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신청합니다.

선물을 받기 위해 쓴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신다면...조금 욕심을 내어 봅니다.
아들이 기타를 치는데 아버님께 들려줄 수 있게 기타 선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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