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손풍금
정경희
2020.03.03
조회 82

초등학교 4학년 늦가을, 어느 날 얼큰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한손에는 풀빵을 한손에는 무슨 007가방처럼 생긴 검정색 가방을 들고 오셨습니다. 우리오남매는 기다리던 풀빵보다 그 가방이 신기해서 우루루 몰려들었지요. 아버지는 자리에 털석 앉으시며, 저를 쳐다보며 손짓을 하며 웃고 계셨습니다. 저는 영문을 몰라 아버지에게 다가갔고 이게 뭐야? 하며 호기심어린 눈을 한 막내도 물리치고는 저보고 열어보라고 하셨는데,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한쪽에는 악보가 붙어 있고 한쪽에는 손풍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연말에 열리는 군내 음악축제를 위해 악기와 노래, 무용을 잘하는 학생을 따로 뽑아서 방과후에 맹연습을 시켰었는데, 제가 리코드 합주부분에 참가하게 된 것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몹시 기뻐셨나 봅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저에게 틈틈이 이 노래 저 노래를 손풍금으로 연주하게 하셨고, 저는 신이 나서 손풍금을 연주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부터인지 아버지는 “희야! 타향살이 좀 해 바래이!” 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타향살이, 나그네설움, 엽전 열 닷냥을 연주했었습니다. 연주하면서 약간은 슬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말없이 눈물만 흘리시는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버지 왜 울어? 에이 ~ 나 안할래. 풍금 치라고 하고선 맨날 울기만 해” 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는 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병이 깊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젊은 나이에 어린 오남매와 부인을 두고 생을 마감할 생각에 몹시 우울하셨고, 고사리 손으로 연주해 주던 손풍금 소리에 그나마 위로를 받으시고 계셨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고 저도 나이가 들고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겪고 몇 년 전 큰 수술을 한 후,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무기력감에 자주 우울한 생각에 빠지게 되었지요.
이번 겨울도 그럭저럭 힘겹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달 전, TV를 켜 두고 가족들 과일을 깎아주려 냉장고를 여는데, 귓가에 착 감기듯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순간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TV앞으로 다가가 노래 부르는 사람을 넋이 나간 듯이 쳐다보았지요. 아직 젊고 앳된 청년이 ‘바램’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 순간 저는 기꺼이 이 청년의 팬이 되었고, 난생 처음 팬심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일편단심 민들레야는 애절한 가사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리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를 때는 어쩌면 저리도 감성을 섬세하게 잘 전달하게 할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간주 중 휘파람 소리는 너무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워서 노래가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그 힘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련하게 떠올랐던 ‘아버지와 손풍금’에 대한 슬펐던 기억이 소환되고, 아버지의 슬픔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버지께 더 많은 노래를 연주 해 드릴텐데...... 그때는 그 슬픔이 무엇인지 너무나 몰랐습니다.
박승화님! 임영웅의 목소리로 들려주세요!
신청곡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바램
미워요
일편단심 민들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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