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은 않겠어요
신청합니다.
완고한 시어머니 모시랴
자식 4남매 키우며 남편 수발하랴
애들 도시락 싸서 학교 보내랴
돈 벌으랴 우리때의 어머니들은
고생도 참 많이들 하셨습니다.
도축장에서 소 돼지 부산물을 파는 일을 하신 어머니는
집으로 일거리를
가지고 오시기도 하셨는데
소가죽을 가지곤 오셨답니다.
소를 잡고 난 가죽은 무겁고 컸어요.
그걸 잘라서 가져오셨는데
그걸 부뚜막에 물을 넣고 삶았지요.
이건 준비 과정이고
적당히 삶은뒤 건져내서 또
커다란 고무대야에 넣고 털을
깨끗하게 깎는게 일이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알바처럼 우리집 방에 와서
일을 도와주시기도 했고
일감을 가지고 가져가셔서
털을 깎아 가져오시기도 하셨습니다.
명절같은 대목전에는
일이 많아서 온가족이
둘러앉아 슥슥 칼로
가죽을 벗겨내야했다.
막 삶은 가죽에 손을
데이기도 했어요.
털을 깎는 일은 얇은
도루코 면도칼로 했다.
그래서 날카로운 칼날에
손이 많이 베이곤 했죠.
어렸지만 나도 일을 많이 도왔어요.
가죽을 삶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나무 막대기로 잘
저어주며 눌어붙지 않게 해야했어요.
골고루 익어 털이 잘 깎이게 말입니다.
어머니가 힘드시니까
노래를 종종 부르셨어요.
일종의 노동요였지요.
"해일듯이 수많은 밤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자주 부르셨다.
그리고 얼마후
최신곡이 추가되었어요.
윤수일이라는
신인 가수의 노래였지요.
가끔 소가죽을 저어주면서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운줄알았다면..."
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가 그 노래를
외워서 종종 불러드리곤 했답니다.
가죽이 눌러붙지 않게
연탄불위의 큰 솥옆에 앉아
막대기로 저으면서...
졸음이 달아나게...
소가죽이 삶아지는 냄새와
연기가 가득한 부엌에서
바닥에서 털을 깎고 계시는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께 좋아하셨답니다.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만을
만나지나 말것을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순간이
또 다시 온다해도
사랑안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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