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2세, 26세 꽃다운 처녀 총각이 만나 100세 인생의 마라톤을
시작한지 어느덧 중반을 달리고 있네요. 우리 부부는 세탁소라는 자영업을 하면서 12년의 결혼생활을 보냈답니다. 힘들고 고단한 날들이었지만 젊음과 미래가 있었기에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돈은 모았으나 2세도 없이 둘의 삶이 재미없고 무의미하다고 느낄 무렵, 남편이 제안을 하더군요. 사나이로서 큰 뜻을 품어보고 싶다며, 사업을 하고픈데 밀어주지 않겠냐고요. 남편과 함께하는 일에 권태기도 찾아오고 지치고, 남편이 벌어다 준 생활비에 살림만 하고픈 욕심이 생겨 허락을 했죠. 1년, 2년, 10년이 넘어도 수입은 없고 나의 무지개 꿈은 산산이 부서진 파도가 되어 날아가 버렸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2년만에 2세가 찾아오고 보니 육아와 생활은 오로지 저의 몫이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남편은 주말, 월말 얼굴보기조차 힘들었고요. 아이가 있으니 마음대로 되지 않아 식당알바부터 보험 판매원, 편의점 알바 등 돈이 되는 곳이라면 맨발로 쫓아다니며 일을 해야했어요. 혼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역시 힘든 일이더군요.
남편은 해가 갈수록 사채에 대출, 돈을 끌어 쓰기까지 정말정말 지옥 같던 날들을 보냈었답니다. 그 세월이 13년 바닥까지 내려간 우리가 찾은 길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던 신혼 초기의 세탁소. 근데 그 시절 힘들었던 세탁소 일은 내가 지낸 지옥 같던 시간에 비하면 천국이었어요.
아이는 훌쩍 커서 중학생이 되어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는 굳은 결심을 하고 다시 힘을 합쳐 인생 제 2막의 마라톤을 시작했어요. 요즘 세탁소는 옛날과는 달라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욕심을 버리고, 작게 쪼개가며 한 걸음 한걸음 천천히 올라오다 보니 산더미 같이 불어있던 빚도 많이 청산이 되었고, 월세에서 전세로 오르기도 했답니다^^그 당시 중학생이던 아이는 인제 25세의 어여쁜 아가씨가 되었어요.
그리고 다음 달 9월이 되면 남편은 환갑을 맞이한답니다. 40도가 넘는 찜통 속에서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세대에 기대어 일하는 남편이 왠지 짠하고 안쓰러워 보이네요. 세탁소로 돌아온 내내 남편은 죄인이 되어 스스로를 올가미에 묶어 놓은 듯해요. 웃음도 많이 없어졌고요. 15년이 되도록 휴일도, 휴가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여행 역시 우리 부부에겐 크나큰 사치였답니다.
그래도 일생에 한번뿐인 환갑에 제대로 된 여행은 한번 다녀와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3년 전 생활비를 쪼개어 환갑 기념 여행 적금을 들었어요.
근데 언젠가 박승화의 가요속으로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푸념하듯 새 집에 가서 한번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해버렸죠. 옆에서 일하던 남편이 여행은 다음에 가고, 모아놨던 여행 자금으로 아파트를 계약하라고 얘기하는거에요. 귀를 의심했어요. 진짜냐며 되물었죠. 소원은 풀어야지, 고생만 시켰는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하면서 미소를 짓더라고요.
승화씨, 이런 날도 오는군요. 제가 남편여행 선물을 주려 했는데, 밉고도 미웠던 남편에게 오히려 선물을 받아보게 되었어요. 지난 달 새로 지어질 아파트 입주계약을 했답니다.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비가 오네요. 감동 받았나봐요. 남편도 여행이 얼마나 가고싶었을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아니까. 그 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보상 받은 듯 해요. 남편이 말하기를 본인 환갑 선물이 아니라 제 환갑 선물이 되겠다며 베시시 웃어보이던 남편의 모습이 오늘따라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네요. 새집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막 설레어요.
승화씨! 우리 두 내외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세탁업을 천직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일 하려고해요. 직업은 귀천이 없다면서요^^ 제 남은 인생의 마라톤 길은 분명 꽃길이 되겠죠?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려요! 어려움을 겪고 계신 청취자 분들도 제 글을 들으시고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노력하면 길은 반드시 있으니까요!
긴 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청곡은 박우철의 연모
이런 곡은 잘 안틀어준다고하던데 승화씨의 재량으로 틀어주실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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