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 할때만 해도 남녀가 손만 잡아도 "누구네 자식 연애질 한다더라."
며 동네에 파다하게 소문 나던 시대였다. 어른들의 흔한 얘기로
'머리에 소똥도 안 벗겨진' 철없는 녀석들이 연애질이나 하며 돌아 다닌다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사천리로 흉꺼리가 나돌던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유별났었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우리 두사람의 연애기질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동네 사람들이 뭔 소리를 하던지 간에 우리끼리 좋으면 됐지!'하는
소위 '배째라'는 식으로 끈질기게 밀고 나갔다.
그깟 소문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니 귓구멍을 아예 꽁꽁 틀어 막자며
마음 먹었다. 따지고 보면 동네사람들도 다같이 자식 키우는 마당에
대놓고 남의 일에 입방아 찧을 입장은 못된다는 판단 하에서 였다.
그러니 우리 둘 사이를 누가 감히 떼놓겠냐며 , 마음 딱 먹고
당돌한 만남을 이어갔다.
내 나이 스물 다섯 한창 꽃다운 나이에다 딱 결혼 적령기였다.
오히려 스물 다섯의 처녀는 혼기가 늦었다고 할 만큼 그 시절에는
결혼 시기가 빨랐다 그나저나 아버지께서 다리를 놓은 셈이건만
소문 날때 날지언정 사전에 연애사실을 얘길 하질 않으셨다.
이유인즉슨 이장과 면사무소 직원의 관계 즉, 예비 장인과 예비 사위란 것이
남사스러워서인지, 눈꼽만큼도 표내지 않으셨던 것이다.
아버지를 통해 자연히 엄마도 그사실을 알게된건 기정 사실 이었건만,
엄마 역시도 전혀 내색 하질 않으셨다.
이미 우리 두 사람 철판(?)을 깐 채 연애 중이였으니, 가령 주위사람들로 부터
손가락질 받을 값이라도 티끌 만큼도 마음에 두질 않았다.
그무렵 직업이 없던 난 , 그에게 문제지를 부탁하신 아버지의
도움으로, 열심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지 구입 후 군인인 그에게 감사 인사 차 내가 용기내어 편지를 보낸것이 ,
사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군대를 제대 하자마자 그는 복직을 했고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했다.
아버지가 그의 인성을 보시고, 참한 사람이라며 일찌감치 점 찍어
놓으셨단다.
내가 그에게 반한 첫째 이유는 성실해 보이면서도 번듯한 직업에 반했고,
둘째는 오토바이 타는 모습이 멋있게 보였으니 단번에 콩깍지가
씌었던 것이다.
35년 전 그때만 해도 데이트 할 장소가 마땅 찮았다.
더욱이 시골이니 다방도 없었다. 그렇다고 소위 빵집에서 데이트를 한다는 건
더더욱 생각조차 못했다. 다행히 그는 우리 마을 담당자였으니
업무상 아버지를 찾는일이 빈번 했을 만큼 , 우리집을 들락날락
하는 날이 잦았다.
그런 날에는 밭에서 일하시던 엄마는 득달같이 달려와 바삐 밥상을 차리셨다.
시골이니 반찬이래야 고작 짭짤한 장아찌에, 보글보글 풍로에서 끓인 된장과
텃밭에서 갓 솎아낸 채소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매번 빠뜨리지 않았다는 점이, 엄마에게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 당시는 공무원 직업이 별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난 어떻게든 공무원인 사람과 결혼 해야지 하는 절절한 바램이 있었다.
박봉인 점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안정적이다는 장점이 있기에
열심히 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낙방의 쓴맛을 몇차례 본 후,
가슴에 지녀왔던 무지개빛 꿈을 완전히 접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 했을 때는 퇴근 후 밤중에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보러 우리집을 들락됐다. 그런 그에게 동네 사람들의 눈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엄마의 철저한 주문(?)이 내려졌다.
신작로에서 우리집으로 들어 올때는 오토바이 시동을 끄고
끌고 들어 오라는 것이었다.동네 사람들이 차차 우리들의 연애질을 눈치
챘는지는 모르지만, 엄마의 노파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컷으리라.
더욱이 딸을 둔 엄마의 애끓는 심정은 시간이 흐를 수록
가시방석 이었나보다. 처녀집에, 그것도 깜깜한 밤중에 남정네가 드나든다며
손가락질 받을 것이 뻔했으니...
시동을 끈 채 125cc나 되는 무거운 오토바이를 끌고 소리 소문 없이 살곰살곰 들어오라는
엄마의 주문을 그도 잘 따라 주었다, 아니 데이트를 하려면 그렇게라도
따르지 않으면 않되었다.
그날도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집에 왔을 때였다. 때마침 동네에
사시는 친척 할아버지가 무슨 볼일인지 아버지를 찾아 오셨다.
늘 두던 곳에 오토바이를 두지않고 하필 그날따라 직통으로
눈에 잘 뜨;는 곳에 오토바이가 있었다. 순간 엄마는 '아차'싶으셨던지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시자마자 벽면에 걸린 '도란스'스위치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후딱 내리셨지 뭔가. 순간 깜쪽같이 임무(?)를
마친 엄마는 아무일 없다는 듯 방안을 들어서며
"세상에나~ 갑자기 정전이 됐네요,"하셨다.
눈 깜짝 할 사이 암흑 천지가 되었으니 할아버지가 가시겠다며
뜨락을 내려 오셨다.
그런데 왠걸,
다른집은 전부 불빛이 환한데 우리집만 깜깜하니 할아버지왈
"다른집은 불이 다 켜졌는데 희안하게 우째 이 집만 정전이 됐노?"
하시자 능천스런 울엄마 왈
"그러게요. 희안 하네요. 도란스가 갑자기 고장이 났나 보네요."
하시며 빛의 속도로 받아 치섰다.
아버지와 그이와 난, 엄마의 센스 넘치는 기발한 재치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그렇다고 곧바로 도란스를 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챌리가 없으신 할마버지는 대문을 나와
뚜벅뚜벅 집으로 가셨다. 할아버지 뒷모습이 저만치 멀어지자
엄마는 그제서야 도란스를 올리셨다.
이따금씩 그때의 에피소드를 떠올릴때 마다 잔잔한 웃음이 나곤 한다.
재미나게 그이와 잘 살다가도 별일 아닌일로 토닥 거릴때도 많지만
행복하게 잘 살으려 오늘도 부단히 노력 중이다.
신청곡 긴 머리 소녀
나훈아의 사랑
노사연 이마음 다시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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