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엄마와의 추억
이보람
2024.03.18
조회 143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얼마전까지 겨울방학이라 두 아이만 집에 있었어요.
다행히 작년에 회사 근처로 이사를 와서
저는 점심시간이면 아이들 점심 챙겨주러 쪼르르 달려갔었답니다.
제가 허겁지겁 도착하면
그때까지도 잠옷만 입고 있는 두 아이는 눈을 비비며 저를 반겨주었지요.
그렇게 바쁘게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개학이라
나는 자유다! 라고 외치며 요즘 해방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제가 2학년쯤 되었을 때일까요?
회사 가신 엄마와 아빠 대신에 남동생과 단둘이 집에서 방학을 보내던 나날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마치 지금의 저희 아이들과 같은 모습이네요.
당시 전기밥솥이 없어서 엄마가 늘 각 지은 밥을 밥그릇에 담아 뚜껑까지 덮어
안방 장롱 안 이불에 넣어주고 출근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바쁘셨는지 깜빡하셨나봅니다.
이불을 들추어도 밥이 없자 저는 평소에 엄마가 하던 걸 더듬더듬 기억해내며
압력밭솥에 쌀을 씻어 넣고 가스불을 켰습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아마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뒤 밥솥의 추는 요란스럽고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집안 가득 탄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제가 너무 오랫동안 불을 켜놓은 탓이였을까요. 아니면 불조절을 못했던걸까요
저는 그저 놀라서 어찌할지 몰라 동동거리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탄 냄새를 맡은 4층의 준영이 엄마가 황급히 내려오셨습니다.
(준영이는 저랑 같은 나이의 남학생이고 저희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습니다.)
“뭐꼬? 보람아 탄 냄새 뭐꼬?
저는 준영이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준영이엄마는 우는 저를 안아주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셨습니다.
”아이고 착해라. 동생이랑 밥 해먹을라고 그랬나.
많이 놀랐제..“하면서 달래주셨지요.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일뿐만이 아니였습니다.

유난히 운동신경이 없었던 저는 학교에서 보는 줄넘기 시험을 앞두고
집 앞 골목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줄넘기가 왜 그렇게 어렵기만 했을까요
줄을 넘기만 하면 되는데 내 두 발은 왜 항상 늦게 떨어지는지.
줄에 자꾸 걸리고 마음처럼 되지 않아 울기 일보 직전이였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준영엄마가 저를 보시더니 같이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줄넘기 하나를 두고 우리는 마주보고 폴짝폴짝 뛰어넘었습니다.
성공할 때까지 해보자며 저랑 같이 한참을 뛰어주셨고
저는 마침내 줄넘기에 대한 감을 찾았습니다.
제가 드디어 혼자 줄넘기를 하자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좋아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뽀글뽀글한 머리를 한데 묶고
늘 활기차게 인사해주시던 준영이엄마
부산 한성아파트에 사시던 준영이네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지금은 준영이의 아이들이자 본인의 손주들과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겠죠?
어쩌면 손주들에게도 줄넘기를 알려주실지도 모르겠네요.
명랑하고 쾌활하셨던 분이니 충분히 그러실테죠

제 아이의 나이가 그 당시 제 나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준영엄마 생각이 유난히 납니다.

혹시라도 이 방송을 준영엄마가 들으신다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밥 태워먹던 그 꼬맹이가 이제 9살 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구요.
이제는 밥도 안 태워먹고 줄넘기도 잘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름도 모르는, 하지만 너무나 감사했던 준영이어머니가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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