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를 들이다
달리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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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렐레>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전원주택살이 6개월 차 주부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20대를 보내고 결혼과 동시에 충남 천안에서 근 30년을 살아서 거의 충청도에 뼈를 묻을 거라 생각하며 잘 지내고 있었는데요.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일이라지만 연고도 없는 이곳 강원도로 오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답니다.
남편 어릴 적 친구들이 으싸으쌰 하더니 땅을 구입하고, 영차영차 해서 집을 짓고, 후딱후딱 이사를 하였죠. 모두 은퇴할 나이지만 다행이 아직 현직에 있어서 두 집은 주말에 내려오고 두 집만 정착을 하였답니다. 문제는 바로 접니다.

입구엔 경비실이 있고, 동 현관엔 비번을 눌러야 들어올 수 있는 아파트에서 오래 살다 보니 울타리도 없고 대문도 없는 집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남편과 남편 친구가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마당을 나가는 것조차 힘들더군요. 집 앞쪽 길에서 차 소리가 나면 빨래를 널다가도 얼른 집으로 들어갔어요. 소리가 나도 무섭고 바람 소리만 들리는 고요함도 익숙치 않더라고요. 물론 처음 이사 왔을 때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보리를 들이기로요. 세계 4대 작물 중 하나라는 보리가 아니라 반려견이에요. 제가 어려서 개한테 물린 경험이 있어 큰 개, 작은 개 할 것 없이 개만 보면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리거든요. 지금도 개를 보면 그때의 공포스러움이 툭 튀어나와 엊그제 일인 양 몸이 움츠러들어요. 그런데 주말에 오는 남편 친구 부부가 초롱이라는 강아지를 키우거든요. 올 때마다 데리고 오는데 처음엔 무서워 가까이 가지도 못했어요. 초롱이는 차츰 낯을 익히더니 저에게 꼬리를 흔들더군요. 한 번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미안해서 한참을 쳐다보면 괜찮다는 듯, 이해한다는 듯 까만 눈동자가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한결같은 모습에 막 좋아질려고 하네요.
그런데 이쁜 건 둘째고 개를 키워볼까 한 결정적인 이유는 낯 선 차나 사람을 보면 한 줌밖에 안되는 몸집에도 불구하고 정말 동네가 떠내려가 듯 짖더라고요. 제법인데... 그래, 마당도 있으니 한 번 키워볼까? 덜 무섭겠지? 목줄을 매고 산책을 다녀도 좋을 것 같네. 이렇게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바로 수소문을 하더라고요. 개를 무척 좋아했는데 저 때문에 못 키웠거든요.

우리 가족이 되려고 그랬나 마침 평창에 새끼를 가진 마당 견이 있다고 해서 찜 해 놨어요. 첫 번째 새끼를 낳았다고 하길래 어떤 놈을 고를까 고민했는데 기우였어요. 딱 한 마리만 낳았답니다.
어미 젖을 더 먹어야 건강하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소개를 해 준 친구를 앞세워 보리를 보러 갔어요. 눈도 못 뜬 강아지를 손바닥에 올려주시는데 그 뭉클한 느낌에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개사돈께 이름을 지었으니 보리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보리라는 이름을 불러주면 어미와 떨어져도 덜 불안할 거고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을 지었거든요. 본 적도 없는데 누런 털에 알맞게 이름을 잘 지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종종 보리의 커나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세요.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보리를 보면 빨리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에요. 얼마 전 개사돈께서 보리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는데요. 볼펜을 입에 물고 공책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어찌나 똘망한지 제가 답장으로 저 정도의 집중력과 비상함으로 봐서 바로 화장실에서 대소변 보고 물 내리는 연습을 시켜도 되겠다고, 조기 교육을 시켜주셔서 고맙다고 보냈더니 깔깔깔 웃으시더라고요.

드디어 다음 주에 보리를 데리러 갑니다. 남편 친구 부부에게 모두 연락했어요. 잔치 한다고 빠지지 말고 오라고요. 우리 집에 새 식구 보리를 들인다고요.
얼마나 이쁠지, 얼마나 똑똑할 지, 얼마나 사랑스러울지, 얼마나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줄 지. 그리고 저를 얼마나 잘 지켜줄지 기대하고 고대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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