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가까워지면 농촌은 '대목장날' 내다팔 고추를 말리고 깨, 콩, 녹두를 거두고 '땡감'을 우려내느라 눈코 뜰 새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농사가 가장 잘 된 벼를 따로 배어 햅쌀을 마련하고 차례에 쓸 대추, 밤을 털었습니다. 장날엔 동네 어른들이 장터로 총출동했습니다. 어머니들은 곡식과 채소를 그득그득 묶은 남산만한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도 모자라 양손에까지 들고 시오리, 이십리 길을 걸어서 읍내로 나갔습니다.
하루에 두세 번 다니는 시골 버스에는 사람보다 짐짝이 더 많아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밑지는 기분으로 서둘러 보따리를 넘기고 산적과 국거리에 쓸 고기며 사과, 배, 조기, 김 등 제수를 장만하고 나면 아이들 추석빔으 사러 장터를 쏘다녔습니다. 아버지는 추석 2 ~ 3일 전 선산을 찾아 벌초를 해두었습니다. 어머니는 벽장에서 놋그릇 제기를 꺼내 잿가루를 묻힌 짚으로 반지반질 윤이 나게 닦았습니다. 아이들은 산에 가서 송편 만들 때 쓸 솔잎을 따왔습니다.
시외버스 터미널과 서울역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 차표를 끊었습니다. 늘어나는 귀성객을 실어나르기 위해 교통부에서는 추석 특별 수송 작전을 펼쳤고 공단에서는 단체 귀성 버스를 마련해 귀향길을 도왔습니다. 새 양복에 모처럼 매보는 넥타이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여자들의 뾰족구두는 영락없이 발뒤꿈치에 무집을 만들어 걷기조차 고역이었습니다. 그래도 고향 가는 길의 마음은 한가위 달덩이처럼 부풀었습니다. 비록 초라해 보이는 흙담장, 멋대로 자란 미루나무, 감나무 한 그루도 옛날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 눈물이 왈칵 솟도록 반가았습니다.
끝으로 동산 위에 떠오른 한가위 달을 보며 만가지 근심을 띄워보내던 추석, 토담안의 붉게 익은 감과 쏟아지는 맑은 햇살, 객지에 흩어졌다가 모여 앉은 가족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햇곡과 새 과일로 풍성했던 차례상...., 가난했을망정 넉넉하던 한가위의 풍경은 누구에게나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청곡은 <이 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애청자들과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애천자 석 순덕 올림
젊은시절의 추석을 떠올리며 ~ 웃음꽃 피워 반겨주는 넉넉한 ' 내고향'
석순덕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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