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라디오
석순덕
2023.10.03
조회 135
저녁상 설거지를 끝낸 어스름 무렵, 가족들은 누렇게 변색된 플라스틱 케이스의 '제니스 라디오'나 사각형 나무통 속에 진공관이 촘촘히 박힌 '금성 라디오' 앞에 둘러앉았습니다. 라디오에서는 '동심초'나 '이 생명 다하도록' 같은 연속극이 흘러나왔습니다. 엄마와 누나는 이별을 앞두고 한껏 감정을 돋운 남녀의 목소리에 몰래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선반이나 경대 위, 대청마루에 '모셔놓고'들었던 당시의 라디오는 지금 같은 누름단추가 아니라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치직거리는 잡음 섞인 방송조차도 잘 나오지 않아 팡팡 치고 이리저리 다이얼을 맞추느라 짜즈을 내기도 했지만 라디오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친구' 였습니다. 솜씨 좋은 형들은 부속품을 사다가 라디오를 조립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라디오의 꽃은 바로 연속극이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련다' '빨간 마후라' '떠날 때는 말없이' 등은 나중에 영하로까지 만들어진 라디오 연곡극입니다. 김수현의 저 눈밭에 사슴이'도 인기였습니다. 이미지가 구성지고 정감 어린 목소리로 불렀던 '총각 선생님'은 같은 제목의 연속극 주제가였습니다. 연속극이 시작되면 온 식구가 성우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쳤습니다.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의 주먹에 판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아이들은 '태권동자 마루치'에 홀딱 빠져 있었습니다. '손오공'도 참 재미있게 들었던 라디오 연속극이엇습니다. 아버지는 샛바람 시원한 툇마루에서 성우 구민 씨의 '전설 따라 삼천리'나 오승룡 시의 '오발탄', 11시 55분이면 '어이타 북녘 땅은 핏빛으로 물들었나'로 시작되는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들었습니다.
'재치문답'은 '재치박사'로 불리는 남녀 ㅍ널들이 나와 퀴즈,. 놀이. 재치 경쟁 드 다양한 게임을 진행하는 공개 방송이었스니다. 한국남 . 안의섭 씨 등이 단골 재치바사로 출연했습니다. 장소팔 . 고춘자 씨가 따발총처럼 쏟아내던 만담도 오랫동안 인기를 누린 오락 프로였습니다.
TV가 드믈었던 1960년대와 70년대 초엔 라디오 연속극에서 희로애락을 연기하던 성우의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구민 . 고은정 . ㅇ승룡 . 장민호 씨 등은 당시 치고의 인기 스타였습니다. 고은정 씨는 영화에서 엄앵란 씨 목소리를 도맡앗기 때문에 같은 인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신청곡은 <잔 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 을 애청자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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