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보내주신 택배상자
전성진
2001.03.05
조회 20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호주머니에서 울렸습니다.
"예, 전 기삽니다."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직장은 아파트를 짓는 건설현장인 관계로 전화가 오면 습관적으로 이렇게 받습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음성은 그야말로 고향냄새가 풀풀 나는 어머니였습니다.요는 내일 집으로 택배를 보내니 잘 받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기 평택으로 발령받아서 지금의 제 집사람이랑 살림을 꾸린지 벌써 4달이 다 되어가는 군요. 그사이 고향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택배박스만도 벌써 큰 사과박스로 5개가 넘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다커서 결혼한 자식도 아직 코흘리게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전화할 때마다 ''끼니는 챙겨 먹었느냐?" "그래, 아가는 별일이 없느냐?", "둘이서 살면서 싸우지 말거라."...등등의 말씀들을 늘어놓으십니다.
이번에 보내신 택배상자에는 겨울 김장김치 마지막것을 보내니 잘 씻어서 먹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제 처는 김치를 담글 줄 몰라서 시댁에서, 친정에서 김치를 얻어다 먹습니다.
제가 장남이고,제 집사람은 1남 3녀 중의 막내라서 그런지 제가 보기에는 집에서 부식거리를 택배로 부쳐와도 그렇게 고마와 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매번 시골에서 부식이나 김치를 부칠때면 다른 것도 함께 부쳐주시곤 해서 이번 택배상자도 내심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택배상자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가니 와 있었습니다. 깍쟁이 어머니는 이번에도 착불로 보내셨더군요. 그런 어머니가 더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김치랑 부식거리는부쳐 줄터이니 운송비는 니가 부담하거래이''하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긴것 같아서 말입니다.
택배박스를 뜯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습니다. 꼼꼼하게 김칫물이 안 새게 포장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먼 타향에서 두 내외가 과일이나 제대로 먹는지 걱정하시는 지 곱게 포장된 사과랑 토마토를 보았을 땐 마치 엄니가 바로 옆에서 그걸 제게 손수 건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그리고 된장국이나 찌게만들때 넣어라고
함께 보내신 홍고추랑 풋고추는 어찌나 고와보이던지...
사실 이곳 평택은 제 고향 경남 사천과는 너무나도 멉니다. 버스를 갈아타고 해서 빨리가도 6시간은 족히 걸리니까요.
하지만, 철이 바뀔때마다 보내주시는 어머니의 택배상자를 접할 때마다 바로 이웃에서 어머니가 사시는 것 같습니다.나이드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했던가요? 멀리 있어서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저녁에 퇴근하면 안부전화라도 해야겠습니다."어머니, 여기는 눈이 엄청 오구요, 바람도 많이 불었습니다.-------"
택배상자에 묻어 온 어머니의 냄새때문에 오늘 하루 현장에서 힘들었던 모든 기억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가 있겠네요.
어머니가 보고싶어질 때면 잠든 아내몰래 살짜기 택배박스를 쌓아 둔 창고로 가서 그 상자를 살며시 불을 부비어 볼랍니다.
멀리 고향에서 어머니께서 손수 손때 묻혀가면서 보내주신 그 박스가 고향 까마귀마냥 반갑게 느껴지고, 어머니의 체온이 전해올지도 모르자낳아요.
사회에 발을 내 딛고 신혼살림을 꾸린지 얼마안된 저에게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그 택배상자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위안이 되네요.
명절이 아니면 찾아뵙기 어려운 어머니, 오늘같이 밖에 바람이 몹시 불고 한가로운 일요일 근무를 하는 날이면 유난히도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제 집사람한테는 비밀이예요, 시샘하니까요)
어머니 부디 환절기에 몸 건강하세요.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그럼 이만
패닉의 m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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