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과 새우깡 한 봉지
김영호
2001.03.01
조회 26

때는 바야흐르 산뜻한 봄 바람이 시작하던 7~8년전 어느 초 봄이었습니다.
낮에는 완연한 봄임을 자랑하던 따스한 햇살과 싱그런 바람도..
해가 지기가 무섭게 한 겨울 삭풍에 이는 바람처럼 바뀌던 그런 변덕스런
겨울과 봄의 중간에 있었습니다...

그 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에 첫 패배의 쓴 잔을 마신 저는 모 아카데미에서 고교 4년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전기대.. 후기대.. 전문대까지..
너무나 쓴 패배의 잔을 연거푸 세번을 마시면서..
다지고 다진 각오와 결심을 품고 시작한 고교 4년생 시절..
다른 친구들은 c대 p대 h대 등등의 소속 기관을 자랑하며 미팅이다 축제다
하며 밝은 세상을 만끽하며 살아갈 동안 저는 h 아카데미.. 그것도 가장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7반의 한 귀퉁이에서 고독과 좌절을 씹어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만 재수라는 걸 하는게 안타까웠던 친구들은 가끔 주말이면 학원 앞을 찾아와서
점심을 사주고 영화도 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구들과 놀고 난 날에는 어김없이 한 잔의 술을 찾곤 했지요..
친구들의 위로가 더욱 제 처지를 서글프게 했었습니다..

그 날도 쓰린 가슴에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하고..
얼큰한 마음에 버스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도 춥고.. 바람도 차고 해서 얼른 집에 들어가서 자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지갑에는 차비로 남겨둔 1000짜리 한장만 달랑 있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가 문득 버스 아저씨가 잔돈 없다면서 피잔하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거스름 돈을 운전 기사 아저씨가 직접 줬거든요...)
빈 속에 마신 술이 속을 메스껍기도 하고, 동정도 바꿀 겸.. 300원 짜리 새우깡을 하나 샀습니다..
거스름 돈 700원을 받아 들고,, 뿌듯한 마음에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버스가 왜 이렇게 늦게 오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받는 거스름돈을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가..
그만 동전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그 동전 때구르르 구르더니.. 도로가 하수구 구멍으로 쏙 들아가 버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100원 짜리 하나쯤이면 무슨 큰 일어었겠냐마는... 하필이면 500원 짜리가...
하늘이 무너지더군요...
이 일을 어찌해야 할 지 생각할 틈도 없이 버스가 저쪽에서 오고 있었고..
저는 그 냥 200원만 넣고 모른 척 하고 타기로 했습니다..
제 뒤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슬쩍 들어가면 모를 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당하게 젤 앞에서 200원을 넣고 탔습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서 걸음걸이가 조금은 어색했지만 당당하게 저쪽 뒤 자리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근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어이! 학생! 어이! 학생!"하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척.. 많이 취한 척하며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 뒤자리에 턱하고
앉았습니다.. 그리곤 새우깡을 뜯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기사아저씨가 버스를 새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디 고장이 났겠지.. 얼른 집에 들어가서 자고 싶은데
하필이면 막차가 고장이 나는 거야...''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아저씨가 "거기 학생 이리와보라니까..!!"하며 저를 빤히 쳐다보는게 아니겠습니까..
마음은 쿵쿵 뛰었지만 새우깡을 제 자리에 놓고 당하게 아저씨에게 갔습니다.
아저씨는 요금통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더군요...
100원 짜리 동전 딱 두개가 있더군요...
아까 정류소의 그 많은 사람들 중 저와 같은 버스는 한 사람도 없었던 겁니다..
그제서야 들킨 것을 시인하며... 아저씨께.. "미안합니다..." 쥐꼬리만한 목소리로
사과를 했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웃기도 하고 빨리가자면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기사아저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화를 내었습니다.
"학생... 자네 대학생이지...??"
저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더군요...
괜히 내 앞에 앉은 여학생이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예..."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무슨 대학생에게 한이 맺혔는지..
대학생이 던지는 화염병에 맞았는지...
대학생 아들이 돈을 많이 갖다 쓰는지...
모든 대학생들의 싸잡아서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좋은 옷 비싼 술로 돈만 쓴다느니..
통일이다 보안법 철폐다 외치기만 하고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느니..
왜 통일이 안되는지 알았다면서...
버스요금 안내는 대학생 때문에 그렇다면서 고래고래 열변을 토하더군요..
한 10분 쯤 잔소리를 들었을까요... 그 시간이 제겐 100년 보다 더 길고
수치스럽더군요...
오를던 취기가 싹 사라지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실컷 열변을 토하던 아저씨.. 조금은 진정 되었는지 담부터는 돈 없으면 돈 없다고 얘기를 하라더군요... 그리고.. 승객들에게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버스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를 숙인채 제자리고 돌아는데...
제 앞자리의 예쁜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경멸과 증오의 눈초리는 "니가 세상 모든 대학생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녀의 손에 들려져 있는 새우깡 한 봉지..
그 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새우깡을 먹고 있으면서.. 저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기사아저씨에게 그렇게 수모를 당한 것도 열받는데.. 감히 나의 새우깡을...
저는 그 녀의 앞에 서서 그녀를 째려 봤습니다..
그 녀가 저를 빤히 처다보더군요..
그리고 그녀는 아까완 달리 따스한 미소로 저를 쳐다 보더군요..
하지만 전 이미 이성을 잃을만큼 흥분해 있었고..
경멸의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그 녀의 새우깡을 획!! 낚꿔챘습니다..
그리고 제자리에 가서 털석 앉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제 엉덩이에 깔리는 "뽀직"하는 소리..
그 소리는 분명... 또 다른 새우깡이었습니다..
그럼 이 새우깡이 내 새우깡이 아니라... 그 녀의 새... 우... 깡...
"호! 통재라.... 이 일을 우찌 한단 말인가.....!"
그 녀는 제게로 획!! 돌아보았고...
저는 말없이 그 녀의 새우깡을 전해 줬습니다..
그리고 저의 새우깡도 그 녀에게 고스라니 바쳤습니다..
그리고 전 다음 정거장에서 도망치듯 그 치욕의 1x0번 버스에서 내려야했습니다..
돈없는 가짜 대학생의 비극이었습니다.. 흑흑흑..
그 날 밤 저는 두시간을 걸어야 집에 겨우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밤 거리는 한 겨울 날씨 보다 더 추웠고..
가슴 속까지 시린 날이었습니다..

이듬에 겨울 저는 진짜 대학생의 신분으로.. 버스비를 정확하게 내고
그 버스를 탔습니다..
하지만 어디에게 그 운전 기사아저씨와 그 이쁘장한 아가씨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울림 옷 젖는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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