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일만 지나면 최진사댁 세째딸에서 전주 이씨 집안 막내며느리로
일생일대 커다란 변신(?)을 꿈꾸는 초읽기 새신부입니다.
결혼준비에 이래저래 지치고 신경도 곤두서있다는 이유로
친정부모님께 짜증도 많이 부리고 끝까지 철없는 막내딸 노릇만 하고 가면서...
새삼 ,여지껏 깨닫지 못했던 아빠 모습에
이렇게 맘 한곳 저려오는 웃음을 머금게 되어 사연을 띄웁니다.
아빠는 현대건설에, 저는 현대아산에 근무해서
계동 사옥으로 늘 같이 출퇴근을 합니다.
어느날 아침 엄마께서 아빠께 백화점상품권을 건내시며
''이거 당신이 명절때 회사에서 받은거니까 아까워 말고
정현이 결혼식날 신게 구두하나 좋은거 좀 사세요'' 하셨지요,
제 기억엔 아빠가 백화점가서 구두 사시는걸 본적이 없습니다.
잘 사지도 않으시거니와 길에서 2,3만원에 사신 구두를 들고 들어와
싱글벙글 싸고 편하다고 자랑을 하셨던 싸구려 새구두 조차도
이제 낡아버린지가 꽤 된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최진사댁 세딸들은 언제나 유행하는 브랜드 구두는 일년에 몇켤레씩 꼭 사신었고,세일때면 또 세일한다고 한두켤레씩 사들여 신발장안에는 온통 세딸과 엄마의 반짝반짝하는 새구두만 가득이었죠.
처음에는 엄마께서 쇼핑하다가 아빠 구두를 사들고 들어오시기도 하셨는데
그때마다 꾸지람을 들으셔서 도로 환불해 오시곤 하셨기 때문에 어느날인가 부터 우리식구들은 그저 ''아빠가 편하게 신고 다니시니 괜찮겠지...''하며
아빠의 낡은 구두에 시선이 가도 그렇게 스스로 핑계를 찾아 외면하게 되었고
한두해 세월이 흐르며 이제는 그냥 무관심하게 살고있었습니다.
여하튼...
막내딸 결혼도 앞두고 하여 아빠도 정말 큰맘을 먹으셨는지 엄마가 건네는 상품권을 받아드셨고."점심시간에 잠깐 다녀오지 ~"하셨습니다.
워낙 말수 적은 아빠께서 신발 고르시며 어색해하실것도 같고
또 사러 안가실것 같기도해서 같이 가겠다고 아빠께 전화를 드리고
점심시간에 맞춰 주차장으로 내려갔지요.
아빠는 아래직원이 대기해놓은 차를 타시면서도 뒷자리 문을 닫으시고
굳이 앞자리에 같이 앉으시며 ''앞이 훤히 보이는 이 자리가 좋아''라고 말씀하시며
사적인 일에 동행해주는 아래직원에게 미안함을 대신하셨습니다.
백화점에 도착해 구두 매장을 둘러보는데
아빠께서는 다짜고짜 ''금강(금강제화)으로 가자!''하시는거에요.
''왜요? 백화점 상품권이라 아무매장이나 가도 되요~''했더니
말도 없이 휘~둘러보시다가 ''저기있네~''하시며 금강매장으로 뒤도 안돌아 보고 쑥 들어가셨지요.
헌데 ... 매장에 들어서자 아빠 연세에 맞는 점잖은 구두를 권하는 매장점원의 말에 시큰둥 하시며 영 신발을 고르지 않으시는겁니다.
''아니...이건 넘 딱딱하네''하시고,또 다른 구두를 꺼내드려도
''이건 앞이 넘둥그네''하시고 맘에 안드는 이유를 하나씩 집어내시는 겁니다.
전 속으로 ''아무래도 안 사고 그냥 가시려고 또 그러시나부다''하는 생각이 들어
젊잖다싶은 아저씨 구두들을 ''아빠 ~이거 이쁘다! 이것도 괜찮구~''라고 마구 권해드리고 신겨봐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러자 아빠께서는 안되겠는지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저~~~이거 굽이 넘 낮아.좀 높은거 없나.키좀 커보이게~''하시는 겁니다.그제서야 매장직원이 알아차렸다는듯이 구두굽이 안으로 2cm,밖으로 4cm 총 6cm 굽의 키높이 구두가 있는 코너로 아빠를 안내했지요. 저는 생각도 못했었던 아빠의 감각(?)에 미소를 지으며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했지요.
아빠께서는 ''나이먹으니까 키가 점점 작아지는것 같아서 ...''라며 ,
키높이 구두를 신으셨습니다.
한참을 신고 내려 보시더니 그제사 맘에 드시는지 ''얼마나 해?''라며
저보고 가격표 한번 보라고 하셨지요.
전 건성으로 꺼내보며 ''다 비슷해요,아빠! 12만원정도니까 백화점 상품권 10만원에 현금 2만원만 더 내면 되요''그랬지요.
아빠는 만족해하시며 키높이 구두 한켤레를 달라고 하셨고,계산대로 향하셨습니다.
거기서 전 또한번 웃음을 지었지요.
아빠께서는 계산대로 가셔서
''이거 백화점 상품권 10만원에 금강 구두상품권 5만원짜리 같이 받지요?''하십니다.매장직원이 ''네~ 그럼요!''했고,아빠께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계산해달라고 하셨지요. 백화점상품권 10만원에 어디서 나셨는지 금강제화 구두상품권 5만원짜리를 내고 11만 8천원짜리 구두를 샀으니 3만 2천원을 현금으로 건네어 받았습니다. 아빠께서는 나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에요~
''이 금강구두 상품권 5만원짜리를 회사앞 담배가게에서 3만8천원에 샀어.그런데 이렇게 3만2천원을 또 거슬러 받았으니 11만 8천원짜리 구두를 10만 6천원에 산거지.게다가 10만원짜리 상품권도 있었으니 현금은 딱 6천원 들었지.이게 얼마나 이익이냐.''
아~ 그제사 저는 아빠께서 백화점에 들어오시자마자 ''금강으로 가자!''단 한마디 외치셨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회사앞에서 구두매장 상품권을 싸게 판매하는 곳이 있다는걸 들으시고 부랴부랴 거기로 가셔서 오늘 아침에 금강구두 상품권을 급히 한장 사셨던 겁니다.
아빠의 철저한 준비와 계획된 소비 생활에
정말 다시한번 머리숙여 존경심을 느꼈지요.
회사로 돌아오는길에 차안에서 아빠는 신발을 꺼내어 무릎에 올려놓고 보시며 ''끈 끝이 이중으로 맺어져 있어''하시고,또 ''구두주걱두 넣어줬지'' 하시고,
''굽이 안으로 한 2cm는 안되구 한 1cm 되겠어''하시고,
''발이 커보이지?''하시고...
''키가 좀 커보이겠지?'',
''좀 긴 바지를 입어야겠네''하시고
''오늘,내일 신고 길들여놨다 토요일날 한번 싹 닦아서 신어야지''하시며
내내 그렇게 참 뿌듯해 하시는겁니다.
저는 차마 몰랐습니다...
아빠도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좋은 새구두 싫어하는 사람 없다는 사실.
아빠도 신고 싶은 구두가 있고
그 구두 하나에 무척이나 기뻐하실수 있다는 사실,
세딸의 새신 신은 모습에 ''허허~이쁘네~'' 웃으시며
그게 낙인줄 알고 사시는줄 알았는데
결코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새 구두 하나에 회사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차안에서 새삼 말수가 많아지셨던 아빠를 생각하며
얼마나 못난 딸이고 얼마나 아빠를 몰랐었던 딸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결혼식날 아빠의 새구두를 보며
새 구두를 신은 아빠의 그 걸음에 맞춰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설때
어떻게 죄송스런 이 울음을 참아낼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니들이 결혼식때 그리 기쁜 웃음만을 보이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사 조금씩 알것도 같구요.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구입한 아빠의 새 구두는
제 가슴 한 편에 두고두고 저린 웃음으로 남을수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철없이 어려운거 하나 모르고 사고싶은거 다사고 편히 지냈던 시간들이
아빠,엄마의 검소한 생활과 자기것 아끼신 때문이란 사실을 이렇게 뒤늦게
깨달으면서도 감사하단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어리석은 딸이 이렇게 마음으로 나마 아빠,엄마께 사랑한다는 말 전한다고 꼭 꼭 말씀드려 주세요...어느누구보다
시집가서 행복하게 잘 ... 사랑받으며 사는 막내 며느리 될테니 걱정마시라구요...
젝스키스의 기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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