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함판날!
안병준
2001.03.03
조회 29
돌아오는 일요일 장가가는 친구의 함을 팔기 위해 2월 28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예비신부 집 근처 부평 역으로 직행하여 친구들과 작전을 세웠습니다. 참고로 함팔기 위해 아파트단지 입구에 도착했을때 신부 고모라는 분이 먼저 나와서 우리를 알아보시고 8남매중에 막내를 시집보내는거니까 재미없게 하면 함을 안사신다고 선전포고를 하시고 들어가셨지요. 그소리듣고 긴장되데요.
모두가 처음 파는 함인지라 어찌 해야할지 서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다 나온 결론은 아파트 단지에서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고함을 지를 수 없다는 의견에 일치하였고, 바로 아파트 입구 조그마한 술집으로 직행, 넷이서 절대로 끌려들어가지 말자 굳은결의를 하며 노가리 시켜놓고 소주 한병씩 사이좋게 나눠먹고 나서 신랑이 말한 102동 703호로 향했습니다. 빈속에 급하게 술을 마신지라 취끼가 금새 오르더군요.
아파트 앞 놀이터가 시작점으로 안성 맞춤으로 보였죠. 그 자리에서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넷이서 하나!둘!셋! 과함께 "함 사세요~~~" 를 외쳤습니다. 취끼가 도는터라 술먹기전에 망설이던 걱정은 온데간데 없고 깡다구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고함소리도 시원하게 나오더군요.아파트가 떠나가라 네놈이 소리지르는데, 벌써 저만치 각 동마다 나와계신 경비아저씨들에게 얼른 달려가 양해를 바라고 다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이십분 외쳤나? 저쪽에서 나올때가 된것 같은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없고 영~반응이 없데요. 우리 소리가 너무 작은가 보다 싶어 더크게 소리를 질렀죠. 그런데 이상한것이 위를 올려다보니까 분명 불이 환히 켜져 있어야 할 703호에는 불에 꺼져있는게 아니겠어요. 이상하다 생각하며 한 30분 "함사세요"를 외치고 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기에 경비 아저씨한테 달려가 좀 이상하다고 말하니 그때 경비 아저씨 왈 "나도 아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어, 703호엔 딸이 없거든?" 그 소리 듣자마자 머리가 멍하데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 신부집에 있는 신랑한테 전화를 걸어 703호가 맞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안나오냐고 우리 고함소리가 안들리냐고 물었더니 전혀 안들린다는 겁니다.
"함사세요"를 외치다 말고 우리끼리 703호가 맞다 아니다를 우기고 있는데 아파트 저편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달려오더군요. 적군에서 보낸 수색대들이었죠. 아저씨들 함팔러왔죠? "그렇다" 라고 답을하니, 703호가 아니고 713호라고 하더군요. 그아파트는 "ㄷ" 형으로 되어서 713호는 703호가 위치하고 있는 뒤에동에 있었죠. 그러니 총각 넷이서 외치는 소리가 아무리 클지언정 신부집에 들리기나 했겠어요? 아무튼 맨 정신이었으면 엄청 창피할 일인데도 술낌이라그런지 그때까지 바라보고 외치던 아파트 동의 경비 아저씨들 을 비롯한 주민들께 "여기가 아니라네요" 한마디 남기고 뒷동으로 향했습니다. 뒷동에 이르러 다시 대열을 재정비하고 "함~~사세요"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기다렸다는듯이 신부 오빠, 형부 되시는 분들이 술상을 들고 나오시더군요. 당연히 흰 봉투도 보였습니다. 간헐적인 신경전을 벌여가며 한발 한발 흰봉투도 밟음과 동시에 그때마다 소주잔을 한잔 두잔 주는데로 받아 먹으며,앞으로 전진 했습니다. 저쪽은 멤버를 교체하면서 술을 권하는데 우린 계속해서 받아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7층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저쪽 형님중에 한분이 집안에서 맥주 한박스를 들고 나오는게 아니겠어요? "자 여기까지 왔으니 이거 다먹고 들어가자" 그 분위기에 다들 "좋습니다, 멋지십니다." 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그땐 이미 우리모두 주량을 넘긴 상태였죠. 전 평소에 소주 반병이 주량인데 7층까지 올라오는동안 벌써 2병은 넘었죠. 형님이 병나발을 불자며 한병씩 따서 돌리고 우린 모두 형님과 건배를 외친후 흥쾌히 들이켰죠.
그런데 빈속에 소주만 먹다가 맥주가 들어가니 갑자기 세상이 돌기 시작하데요. 그때 맥주 한박스를 다먹고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아마도 이때부터 필름이 끊기기 시작했나봐요) 어쨌든 집에 들어가서 다함께 큰절하고 진수성찬인 밥 상에 둘러 앉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고주 망태가 된 우리일행들에게는 그림에 떡일뿐 손이 갈수 없었지요. 전에 신부를 한번도 소개받지 못한터라 친구가 신부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 신부가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간헐적으로 끊기던 필름이 완전히 끊겨 버린게 그때부터인것 같습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니 모텔 방이었고 내 몸에는 와이셔츠에 넥타이가 그대로 걸쳐져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친구 세놈이 대자로 뻗어있고, 어떻게 신부집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모텔까지 왔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더군요. 차례로 친구들을 깨우고 자초지종을 들얼본 즉, 신부집에 들어가 신부소개가 끝난후 상모라는 친구는 한술 뜨지도 않은 밥그릇에 코박고 자고, 저는 화장실 들어가서 나오질 않기에 신랑이 열어보니 쭈구리고 앉아 자고 있더랍니다. 그 이상의 비화도 있지만 시간 관계상 언급은 삼가하겠습니다. 다행이도 친구 두놈이 정신을 잃지 않았기에 우리를 부축하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애길 듣고 8남내 쌍쌍이 모인 대가족 앞에서 보인 실수를 생각하니 신랑,신부에게 미안하고 더우기 나이드신 신부댁 어른들께 정말 죄송스럽더라구요.
내일 결혼식에 가는것도 망설여집니다. 어른들을 어떻게 뵈어야할지 원~
그나저나 분명 봤는데도 기억나지 않는 신부 얼굴은 봐야하니까 참석해야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102동 경비아저씨이하 주민들께 소란피워서 죄송하단 말씀좀 전해주세요.
그날 전 함값 구경도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흰봉투만 모텔방 바닥에 즐비할뿐 알맹이는 보지도 못했죠. 친구 수동이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수동아! 혼자 먹으면 다친다."
아직까지도 속쓰려 죽겠습니다. 함 팔러 갔다가 술병만 얻어왔습니다.
싸이 "성공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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