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폭발사고
임효택
2001.03.03
조회 27
저는 몇 해전 우리집에서 격었던 이리열차 폭발사고도 아니요, 아웅산 폭발사고도 아닌
“막걸리 폭발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하여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그러니까 몇 해전 추석 연휴를 시댁에서만(강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고 떠날 채비를
하는데 시어머니께서는 송편이며 쌀, 참기름등 기타 여러가지를 자동차 트렁크 가득 챙겨
주시던 중 남편에게 막걸리 한병 담아줄까를 물어보시더니 평소에도 술을 즐기는
남편 “한 병 담아 주세요”
남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님께서는 시골집 뒤안 항아리에서 소주PET 빈병을
어디서 구하셨는지 거기에 하나 가득 문제의 막걸리를 담아 저에게 건네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것 저것 가든찬 자동차 뒤 트렁크에 문제의 PET병을 쑤셔 넣으려고 하는데
남편이 차 뒤 트렁크 실으면 넘어져 흘러 내릴 수 있다며 운전석 옆에 고이 모시더라구요
이것 저것 빠진 것이 없는가를 확인하고 떠날 채비가 다되어 우리가족은 시댁 어르신께
인사를 하고 무사히 우리집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시어머니께서 챙겨 주신 여러 가지를 낑낑대며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앞까지
남편과 저는 몇 회를 왕복해서 겨우 옮기는데 실을 때는 별거 아니다 싶었는데 내릴 때는
왜 그렇게도 많은지 좌우지간 우리 부부는 모든 짐을 다 내려 집안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몇일 후 문제의 폭발사고가 발생하던 날 이었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저녘상 앞에 앉더니 시댁에서 가져온 막걸리 한잔 마시고 싶다며
냉장고를 가리키더군요. 그래서 전 PET 병에 담긴 막걸리를 꺼내 남편에게 건네주는데
술병의 뒷 꽁무니까 불룩 솟아 올라있는데 별 대소롭지 않게 남편에게 건네주고 술잔을
챙기려는 순간 “퍽”소리인지 “꽝”소리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굉음과 함께 집안은 정전이
되어 깜깜한 동굴속 이었고 놀란 애들은 울어대고 하늘에서만 내리는줄 알았던 비가
집안에서도 내리더라구요
그때 저희 집은 아파트 18층이었는데 아파트가 무너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은 물론 두려움이 엄습하여 오는데 “하느님 어찌 하야 우리가족에게 이런
재앙을 안겨 주시나이까? “하는 기도아닌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 해도 이미 날이 어두어져 깜깜한데다가 남편 또한 너무 갑작스레
당한 상황에서 잠시 멍하니 밥상앞에 앉아 있더군요
그렇게 몇분 동안 천정에서 떨어지는 파편 같은 막걸리 비를 맞고 있던 남편이 얼른
현관문쪽에 있는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만지더니 불이 켜 지더라구요

불이켜진 집안에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아니었죠
그 처참한 광경을 보지 못한 분은 상상이 안가실 겁니다.
천정부터 방바닥까지 PET병 가득 담긴 막걸리가 T.V며, 오디오,냉장고,쇼파,신발장등 말
그대로 온 집안에 범벅이 되어 있었고 하다못해 남편과 아이들 우리집 식구 모두는 빗방울
처럼 흘러 내리는 끈끈한 액체에 머리며 옷은 누렇게 물들었죠.

그래서 어쨓냐구요
그날 우리는 밥은 고사하고 집안 여기 저기에 남은 폭발 흔적을 없애느라 새볔녁까지
대청소를 했야만 했습니다.

대청소를 마친 우리 부부는 폭발의 원인과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가칭 “막걸리 폭발사고
진상조사회의”를 하여 결론을 내렸는데
원인은 남편이 트렁크에 쑤셔 넣으려던 막걸리병을 자동차 운전석 옆에 놓는 바람에
한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무더운 날씨에 그대로 노출되어 최적의 발효가 진행되면서
가스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죠
쏟아질까 하여 꽉 막아둔 병뚜껑 때문에 가스는 배출되지 못하고PET병안에는 높은 압이
차올라 배뿔데기가 되어 있었던 거죠
이 상태에서 병뚜껑을 여는 순간 문제의 폭발사고가 발생하였고 폭발한 액체가 온집안을
엉암으로 만든 것이었죠

다행이 인명피해와 큰 재산피해는 없었지만 아직도 우리집 거실에 그날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형 그림사진을 보면서 차마 웃지 못할 그 때를 회상해봅니다.

그 후론 저희 남편 시댁 어머님께서 막걸리 한병 담아주랴는 물음에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거절 합답니다.
뱅크-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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