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시집간지 얼마되지 않은 새색시 시절... 하루는 시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커다랗고 누런 호박을 하나 사오셨어요. 그리고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빨지 않은 솜이불을 갑자기 꺼내 며느리에게 오늘안에 다 빨아놓으라는 것처럼 그 큰 호박을 제게 들이미시며,
"아가, 오늘은 호박죽이나 구수하게 한 번 먹어보자." 이러시며 치과에도 가고 친구분댁에서 좀 놀다오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호박죽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제가 어떻게? 제가 호박을 끓이는 게 아니라 호박이 저를 끓이겠더라구요.하지만 어떡합니까? 하늘같으신 시어머니 명령이니 염생이 새끼마냥 대답만 "네"했죠. 아니, 그런데 막상 호박죽을 만들려니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하든가 말든가 하죠. 그 큰 호박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니가 이기내 내가 이기냐 턱을 괴고 째려보기만 했죠. 그래도 시집까지 간 여인인데 호박죽 끓이는 법도 몰라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더라구요.그래서 죽이 되는 밥이 되는 내가 한 번 해보자 싶어 팔을 걷고 나섰죠.
옆집 이웃에게 큰 압력밥솥까지 빌려오고 전에 집에서 먹어봤던 호박죽을 떠올리며 거기에 들어갔던 것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빌려온 압력밥솥에 그 큰 호박을 통째로 넣고 물을 붓고 팥도 넣었어요.그리고 쫀득쫀득한 새알이 생각나서 밀가루를 반죽해 똥글똥글 빚어넣고 그래도 그 커다란 호박이 간이 되어야 하니까 굵은 소금을 몇 주먹 퍼넣었습니다.그리고는 내가 해냈다는 기쁨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왕 시어머니께 점수 따는김에 확실히 따자싶어 그 압력밥솥을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빨래를 했죠. 한참 있으니까 압력밥솥에서 취취취취 끓는 소리가 나더군요. 저는 제 훌륭한 작품을 시어머니께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 어머니께서 오시기만 손꼽아 기다렸죠. 잠시후 초인종이 울리고 저는 얼른 나가 귀여운 새색시마냥 실실 웃으며,
"어머니, 어머니께서 드시고 싶은 호박죽 제가 맛있게 끓여놨어요." 이랬죠.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래 한 번 맛이나 보자 "하셨어요. 저는 어머니 입가에 번질 미소를 생각하며 너무나도 당당하게 압력밥솥을 열었어요.아니, 그런데!!!
구수한 호박죽이 되어있을 줄 알았던 그게... 고사지낼 때 올려놓는 돼지머리마냥 그 큰 호박이 푹 퍼질 대로 퍼져서 저와 시어머니를 노려보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시어머니의 그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우리는 약 5초간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어머니께서 비비 꼬시며 하시는 말씀,
"얘, 니 눈에는 이게 호박죽으로 보이냐? 내가 호박죽 끓이랬재,누가 호박탕 끓이랬냐? 니 호박죽 끓일 줄도 모르냐? 시집오기 전에 그런 것도 안 배웠냐?"
전같았으면 왈칵 눈물이 나올 상황인데 제 자신도 너무 황당해서 눈물조차도 나오지 않더라구요. 정말 저는 맛있는 호박죽으로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시어머니께서 문을 확 닫고 방으로 들어가버리신 다음에 저는 조심스럽게 그래도 애쓰게 만든건데 맛이라도 보자 싶어 국자로 퍼서 먹어보았죠.그런데 웩!!! 이게 과연 사람의 손에서 나온 음식인가 하는 공포까지 생기더군요. 호박죽 끓인다고 압력밥솥에 그 큰 호박 통째로 넣는 사람은 뭐 어디 저밖에 없나요?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산답니다.
백지영의 나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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