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편지라도 보낼 수 있다면
박선미
2001.02.24
조회 18

하루종일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큰애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청소하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찍은 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혼자 앉아 앨범을 정리했다.
작년 6월 이후로는 우리 가족 앨범에 단 한 장의 사진도 꽂혀 있지 않았다.
무덥던 작년 7월 간단한 다리수술 후 몇 일 있다 퇴원할 거라던 엄마는 의료사고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이후로 엄마는 단 한번도 꿈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 나이 마흔 아홉, 시집보내지 못한 두 딸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막내아들을 남겨 놓고 떠나면서 큰딸인 나에게 할말이 참 많을 것 같은데.
나는 엄마에게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잘 살아가고 있는 내가 엄마는 미운가 보다.
엄마에게 편지라도 보낼 수 있다면. 오늘도 이렇게 혼자 앉아 중얼거려 본다.
"엄마! 대문 밖에 서서 담배 피우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 슬퍼 보인다고 새벽2시에 내게 전화해서 엉엉 울던 둘째딸 영미가 작년 10월 결혼한 건 알고 있지. 엄마 떠나기 몇 일 전 엄마가 결혼 날짜도 잡아놓고 예식장도 예약하고 웨딩드레스 입어 본 모습도 봤으니까. 영미 결혼식날 아버지 옆 빈자리가 왜 그리도 크던지. 결혼식 내내 우느라 우리 이쁜 영미 모습 제대로 보지 못했어.
그리고 엄마! 엄마가 항상 곁에 없으면 못살 것 같다던 막내아들 희성이가 1월29일 군에 입대했어. 그날 참 추웠는데. 나 그날 이후로 열흘 동안 꼼짝도 못하고 앓아 누웠었어. 왜 그렇게 몸미 아프던지.
엄마! 나 3주 후면 둘째 아이 낳는데. 엄마 떠나고 임신 사실 알게 되어 엄마에게 이야기도 못했어. 첫째 아이 놓고 산후조리 하면서 4남매를 키운 엄마가 시키는 데로 안하고 책에 읽은 데로 하겠다고 내가 고집피워서 엄마가 무척 속상해 했었지. 이제 어쩌지. 책에 있는 것보다 엄마가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맞고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엄마말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 할머니가 자꾸 기력이 없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야. 미옥이가 혼자서 직장다니고 살림하느라 참 고생인데 나는 나사는 게 바빠서 아무 것도 도와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
아버지가 하시는 꽃집 요즘 봄이 다가와서 그런지 잘되는 것 같아. 2-3일에 한번씩 도식락을 싸서 가는데 무척 잘 드셔서 다행이야. 아버지에게 가는 것도 이제 얼마 못 갈것 같아. 움직이는게 조금씩 힘들어지네.
엄마 빈자리가 왜 이렇게 크지. 엄마 살아있을 땐 아무것도 아니던 일들이 왜 이렇게 아프게 다가오지. 엄마 항상 주부습진으로 고생해서 손이 거칠었는데 나도 엄마를 닮아서 손이 거칠어. 엄마손 한번만 잡아봤으면.
엄마! 참 보고 싶다."
오늘도 이렇게 혼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하소연 할 방법밖에 없다는 현실이 몸서리 쳐지게 싫어진다. 이제 봄이 오면 비가 자주 올텐데 걱정이다.
비가 빨리 그쳤으면 좋겠다.
얄로-젖은 머리 젖은 얼굴에 젖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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