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취객과 아버지,,,,,
조은정
2001.02.23
조회 20

며칠전 부평에 나갈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습니다. 퇴근시간대 라지만 인천지하철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모두 시선이 한곳으로 모입니다. 그날도 한몸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른 저녁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는 아저씨 한분 이었습니다.
잠시후 아저씨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큰소리로 "원 자 력 병 원 " 하고 외친는 겁니다. 상대방에서 못알아 들었는지 아저씨는 다시한번 "아니 원 자 력 병 원" 하고는 열심히 번호를 적더니 또 한통의 전화를 겁니다.
"여보세요~~거기 원자력병원이죠,, 내친구가 거기 입원해 있는데 거기 가려면 어떻게 가야해요,, 여긴 지하철인데~~~~~",,,,,,
전화를 끊고난 아저씨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몰린것을 알아는지,, 누구에게 라고 할것도 없이 그냥 허공에 대고는 "술 마시면 다그래,,다~~`"
순간 2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술 때문에 돌아 가셨습니다. 애주가라기 보다는 알코올 중독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 먼발치에서 아버지 목소리만 들려도 멀리 돌아서 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신날에는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저희 4남매 에게는 고행의 시간이었습니다. 방 윗목에 차례대로 무릎꿇고 앉아 아버지의 지난시절 살아온 일대기를 듣고 또 들어야 했습니다.
술에 취하면 항상 말도 안돼는 억지와 주사로 주위사람들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동네에서도 점점 인심을 잃어갔던 거지요,, 그러나 사람이 처음 태어날때부터 나쁜사람은 없다고 저희 아버지도 처음부터 그런분은 아니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들 하지요,, 그말이 정말 실감이 나더군요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양쪽다리에 인공뼈를 넣는 수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휠체어 생활을 하셨고,,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의욕도 상실하고,, 대신 술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술이 없이는 못살게 되었고,, 식구들이 뭐라고 한마디라고 할라치면,,내가 돈도 못벌고 이러고 있으니까 무시하냐면서,,오히려 화를 내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적령기가 되면서, 전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다음에 내가 결혼하더라도 아버지 손은 절대 잡지 않겠다고,,,,,,,
이런 제 마음이 하늘의 노여움을 샀는지 아버지는 언니의 결혼식을 몇달 남겨놓고
돌아가셨습니다. 싸늘히 식어져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서 생각하니 내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가 왜 그렇게 밉고,, 싫던지,,,,
한번도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버지에게 무지한 딸을 용서해 달라고,,죄송하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런 아버지라도 내곁에 계시다는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를,,,,,,, 사랑을 하면서도 그것이 사랑인줄 모르고,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사랑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듯이,,,, 술에취해 주사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행동이 하나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았을땐 이미 아버지는 제곁에 없었습니다. ,, 작년 5월 외삼촌의 손을잡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엄마 옆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사람은 삼촌이 아니라 아버지 였는데,,금새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아버지의 3주기가 다 되옵니다.
요며칠 아버지가 계속 꿈에 찾아오시는걸 보니 술 생각이 간절하신가 봅니다.
얼었던 땅이 녹고, 꽃이피는 3월엔 신랑과 함께 소주한병 사가지고 아버지께 가야겠습니다.



화이트 "내가 가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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