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기
양희준
2001.02.22
조회 13
안녕하십니까?
저는 광주에 사는 아직 철이 덜든 대학생 입니다,
비록 순탄치 못했던 저의 성장기의 일부분을 저를 아는 소수의 사람만이
웃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깝기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7년전 제가 중학교 1학년때 일입니다.
초등학교떄 부터 장난이 심했던 저에게 입학하기전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희준아,중학교 가서는 선생님 말씀 잘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
"네"하고 저는 자신있게 대답했지요.
누구나 그렇듯 입학을 하게되면 잘해야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생기지요.
저도 그땐 정말 열심히, 착실하게 모범적인 학생이 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입학후 일주일 정도는 정말 수업도 열심히 듣고 조용히 지냈지요.
그런데 계속 조용히 있으려니 몸이 근질 근질 하더라구요.
그래서 수업중에 미술시간에 사용하던 조각 칼로 책상을 후벼파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놈의 책상이 낡아서 그런지 푹푹 잘 파지더니 어느새 큰 구멍이 생기더군요.
이구멍이 꼭 골프장에 홀 처럼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다음날에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기총의 총알,일명''BB탄''을 들고와서 연필을 골프체 ,BB탄을 골프공 삼아 마치 제가 골프선수 인양 퍼팅을 했지요.
수업시간에 제가 하는게 어찌나 재밋어 보였는지 제 짝꿍이 책상을 파더라구요.
"희준아,나도 BB탄 하나만 주라"하곤 들으라는 수업은 안듣고 퍼팅을 하더군요.
저와 짝꿍이 하는게 신기했던지 우리반 애들 몇명이 책상을 파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반장이라는 녀석까지 파게 됐습니다.
덕분에 친구들이랑 친하게 되었고 점심시간 마다 토너먼트 경기까지 치루게 되었지요.
히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재밋었지요.
그러나 좋은 시간도 잠시..담임선생님께서 책상에 후벼판 구멍을 발견하셨지요.
담임선생님은 "누구야? 이 발명품을 만든 분이?" 하며 부드럽게 물으시더군요.
아이들이 전부 절 처다보더군요, ''의리없는 놈들''하며 속으로 욕하며 자리에서 일어 섰죠.
"어,희준이구나,내일 어머니 학교에 모시고와"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더군요..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일로 어머니는 학교에 초대 받게 되셨습니다.
어머니가 학교에 초대 받으시던날 고개를 숙이며 집안에 들어선 저에게 어머니는 "희준아,니가 사랑이 부족한 아이니?" ," 애정결핍증이니 니가? "하시더군요.
사연인 즉슨,선생님께선 조용해 보이던 저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소외된 아이로 착각하시고는 어머니께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부탁 드린다고 어머니를 부르신겁니다.
저는 한순간에 자패아가 되었습니다..
두분 생각을 해보십시오.얼마나 어이가 없습니까?
자패아로 오해받느니 차라리 자수하자고 생각한 저는 선생님께 모든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그사건을 계기로 저의 본색은 들어났고 선생님의 블랙리스트 1위로 꼽힘과 동시에
성씨가 양인 관계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요.
양..아..치..
이게 어떻게 중학교 1학년의 별명이 될 수 있습니까?
이거 방송용어로 적합합니까?
부적합하다면 순화해서 불러 주십시오.
하여튼 그때부턴 저는 ''희준''이 아닌 ''양아치''로 불려졌었죠.
''기왕에 이렇게 된거 장난이나 실컷 치자''라고 생각한 저는 저의 동료 ''참치''
''대두'' , ''골뱅이'' , ''영감'' , ''메뚜기'' , ''고릴라''등의 행동대원들과 작전참모인
저를 중심으로 작업에 들어 갔죠.
유명한 사건들이 많았었죠.
점심시간 친구들이랑 말뚝박기 하다가 생긴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공격하는 팀이 수비하는 팀의 등위에 뛰어 올라가는데.
저희는 책상위에 올라가서 육중한 몸무게와 가속도를 이용해서 올라타는 탓에
수비하는 쪽이 정말 힘들었죠.
한번은 몸무게가 80킬로 이상 나가는 녀석이 책상위를 날라서 쪼그만 녀석의 등에 앉았죠.
그녀석 허리 디스크로 일주일은 못봤습니다.
기술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새집을 만든다고 가로,세로 1미터짜리 나무판을 가지고 오라셨죠.
새집을 만들기 위해 기술실로 가는 도중에 ''이 나무판으로 썰매를 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중앙계단에서 나무판을 깔고 쓩~쑹 하고 타고 내려왔죠..
정말 재밋더라구요.주위의 친구들 너도 나도 중앙계단에서 썰매를 타더군요.
그러던중 나의 오른팔 ''참치''가 잘못해서 계단에서 구르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녀석 전신 타박상으로 몇일동안 얼굴도 못알아봤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의 영웅 '' 빠떼루 ''아저씨를 보게된 저는 레슬링에도
눈을 뜨게 되었지요.
청소시간 책상을 뒤로 넘기고 1대1로 레슬링 시합을 했었지요.
이미 결승에 오른 저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준결승을 치루는 두아이의 경기를 보고
있었죠.
반칙을 범한 한친구에게 일제히 "빠떼루 조야합니다" 하더군요.
신판을 보던 아이는 그아이에게 빠떼루를 지시하고 공격하는 아이가 허리를 잡고
돌리는 순간 ...
아이구 이를 어째? 책상모서리에 중요한 부분이 그만..
그녀석은 급히 병원에 실려가고 레슬링의 전파자인 저때문에 죄없는 어머니는
또다시 초대를 받으셨지요.
그후로도 저의 장난은 계속 되었습니다.
저를 향해서 지독한 개스를 풍긴녀석이 괴심해서 엄동설한에 X침을 놓다가 거의 반 기절시킨일.
영화가 너무 보고싶어서 반장이란 놈이랑 수업 땡땡이치고 보러갔다가 무지 하게 맞은 일.
그러던중 저에겐 잊지못할,정말 웃지 않을 수 없는 사건 이른바 대박이 터졌지요.
때는 어느 추운 겨운날...
물리 시간에 실험 준비물로 부탄가스와 성냥을 가지고 갔었지요
실험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산중에 위치한데다가 난방시설이 없는 탓에
교실은 정말 얼음장 같았지요.
부탄가스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불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 저는 방법을 강구한 끝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주전자 두껑을 닫고 주둥이에다가 부탄가스를 날아가지 않게 손으로 막으면서
개스를 넣었습니다.
주둥이를 손으로 꾹 막고있다가 한녀석이 성냥불을 붙이니까 신기하게도
주둥이에 불이 잠시나마 붙더군요..
우리는 신기해서 여러차례 반복했고 주위에 아이들이 모여들었죠.
불이꺼지고 다시한번 개스를 넣고 성냥불을 붙이는데 이상하게 불이 안붙더라구요.
이상해서 성냥을 다시 켜서 붙여도 불이 안붙는 거에요.
이상한 나머지 한 녀석이 두껑을 조심스레 열어 보았는데 불이 확 올라오더라구요.
그녀석이 놀랐는지 "야 나 머리 안탔지?"하고 물어오는겁니다.
저도 놀라서 그녀석을 처다 봤죠.
그녀석 앞머리와 눈섭이 업더군요.다타서요.
전 그애의 실망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차마 다탔다고는 할 수 없더군요.
뭔가 이상한걸 느꼈는지 거울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더군요.
차마 앞에서 웃을 수 없어서 화장실에 가서 배가 찢어지도록 웃었죠.
담임선생님께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에 사태수습에 나섰고 괴로워하는 그친구에게
"민철아,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부디 입다물어다오."하고 부탁했죠.
녀석은 우는 목소라로"알었어" 하더군요.
우리의 노력에도 ...하늘도 무심하시지 들키고 말았담니다.
어떻게 됐냐구요?
그날 저,,죽도록 맞았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참 좋았던 시절 이었죠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마지막으로 심한 장난에도 ''사내아이는 그렇게 커야돼''하며 이해해 주신 아버지와
동네 부끄럽다고 글올리지 말라시던 어머니와 학교 무사이 다니게 해주신 선생님..추억을 만들게 도와준 친구들께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습니다.

샤크라의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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