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날에 생긴 일
문용원
2001.02.22
조회 15
졸업식 날에 생긴 일
맑고 투명한 햇볕과 적당히 싸늘한 바람이 있어 대학 졸업식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충남 아산에 위치한 S대학교에 한 부서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대학 교직원입니다. (순천향대학교 입니다만 방송인 관계로 S대학교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날은 제가 근무하는 대학교에 제 육촌 여동생 두 명이 동시에 졸업하는 날이기도 하였지요.
이미 작고하셨지만 마을 향교의 전교이자 훈장으로 계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저는 평소 체통과 체면을 매우 중시하는 편입니다.
사실 저의 개인적인 소신으로는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저만큼 체통을 중히 여긴다면 성범죄니 청소년 탈선이니 하는 등의 온갖 낯부끄러운 범죄는 없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날도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제 체면도 있었겠지만 평소 당숙과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터라 육촌 동생들의 졸업선물로 볼펜 ;49489;트 두 개를 준비하였습니다.
육촌 동생 중에 언니와 핸드폰으로 연락하여 우리 사무실에서 약 1 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건물의 현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졸업식으로 인해 교정을 가득 메운 인파 속을 헤치며, 반외투 호주머니 양쪽에 준비한 선물을 넣고 천천히 걸어서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 체면이 있지 호주머니 속의 선물이 좀 약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교정 내에서 꽃다발을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꽃다발이나 하나씩 더 준비하자 마음먹고 그 쪽으로 향했습니다.
꽃을 파는 상인들은 교통통제를 위해 설치해 놓은 바리케이트 뒤편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케이트의 형태는 검문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형 받침의 철골 구조였습니다. 또한, 이 일대도 졸업식에 참석한 가족들과 졸업생들로 온통 인산인해의 상황이었습니다.
꽃을 사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왼쪽으로 두고 돌아가는 순간 인파에 밀려 저의 좌측 둔부가 바리케이트를 스치는가 싶더니 "찌지지익~~" 불길한 예감이 드는 파열음과 감촉이 전해져 왔습니다.
설마 바지가 찢겨지진 않았을거야 !
순간이긴 했어도 제발 예상이 빗나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왼손으로 의심나는 부위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맨살이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정확하게 적중했을 때의 비참함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 겁니다.
아! 이 수 많은 인파 속에서 어쩌란 말인가?
나중에 확인해 보았습니다만 ''ㄱ''자로 ;52255;겨진 양변의 길이가 무려 약5cm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바리케이트 모서리에 ''S''자의 고리가 용접되어 붙어 있더군요.
점잖은 체면의 대학 교직원이 비록 고의는 아니지만 이 수 많은 인파 속을 엉덩이 속살을 내놓고 다녀야한단 말인가?
아찔하더군요. 더 이상 꽃다발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바지를 바짝 추켜올리고, 반외투 끝을 최대한 잡아 내려 보았습니다.
사건현장과 약속장소는 불과 100여m 정도, 제발 아는 사람이나 만나지 말길 속으로 간절히 외치며 조심스런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선배님 안녕하셔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
후배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이 대학교 출신이다 보니 같은과 재학생들은 모두 후배들이거든요.
"아 그렇구나, 졸업하더니 더 예뻐졌네, 그래 졸업을 축하한다. 다음에 또 보자"
그러면서도 제가 후배들에게 먼저 등을 보이며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겨우 한고비 넘겼다 싶어 현관 앞에 다다른 순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교수님이 "아이구 오랜만입니다"라며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겠어요?
두 손으로 반외투의 끝자락을 잡아 밑으로 당기고 있었는데 .......
어쩔 수 없이 반외투 끝을 슬그머니 놓아 버렸습니다.
손아래 사람이, 더욱이 점잖은 집안 출신이라고 자부하고 살아온 제가 한 손으로 악수에 응할 수는 없는 입장 아니겠어요?
어떻게 그 자리를 모면했는지 아직까지도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우선 구석진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벽을 등지고 서서 기다리며 당황한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연신 표정관리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오늘 갈아입은 팬티의 색깔이 바지색과 비슷한 계통의 짙은 색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순간 안도의 기대감이 들더군요.
어쩌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꼭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대형거울 앞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몸을 틀어 확인한 순간, 말 그대로 "오 주여~"외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팬티는 검은 계통이었습니다만, 찢겨진 부위가 뒤 호주머니 바로 밑부분이다 보니 호주머니를 만들기 위하여 대어 놓은 하얀 천이 찢겨지 바지사이로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극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초 계획대로라면 당숙과 당숙모도 만나서 졸업 축하의 인사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겨우 만난 육촌동생에게 선물 두 개를 동시에 전해 주고 다른 약속이 있어서 같이 못 가겠으니 동생에게도 대신 전해주고, 아버지 어머니께도 인사 여쭤달라며 겨우 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육촌 동생이 완전히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을 확인하고는 사무실로 발길을 돌리는데 큰일은 이제부터였습니다.
불과 1Km 남짓 거리가 이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용감해 지더군요.
그렇게 어색한 걸음걸이로 뒤통수를 의식하며 걷기보다는 차라리 당당해 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사자인 제가 바지가 찢긴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당당하게 걷게 되면 뒤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안해하거나, 최소한 동정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곧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안면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걸었지요.
아무리 당당하게 걸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뒷통수가 따갑고, 등에서는 식은 땀이 났습니다.
겨우 도착한 사무실에는 여직원이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태연한 척 옷이 찢겨져 당황되어 혼났다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상황을 모면하고 넘어가려고 했지요.
그 여직원은 팀장인 저의 불행을 보고 대놓고 웃을 수는 없었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혀를 깨물어가며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더군요.
제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인간이란 남의 불행을 보면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 것일까요?
급기야 여직원은 도서관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며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 나가더군요.
저도 그렇게 급하게 도서관에 다녀와야 할 이유를 구지 묻지 않았습니다.
오늘 제 차를 빌려 타고 나간 아내를 급하게 호출하여 다른 바지를 가지고 오게함으로써 오늘의 사건을 대충 수습했습니다만, 아내도 쇼핑 중에 전화를 받아 생각만큼 빨리 와주지는 않았습니다.
살아가면서 다시는 이런 일은 안 당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오늘 일을 정리해 봅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정말 몸살나는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는 바리케이트 모서리를 특히 조심하며 살기로 하였습니다.
PSY의쇼킹! 양가집 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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