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열흘만에 외박한 신랑있으면 나와봐요-
정희숙
2001.02.21
조회 16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한지 오늘로서 254일이 지난 새댁이라면 새댁이죠
요즘들어 우리 신랑이 "이젠 헌댁이 다 되어가네" 내지는 "걸음걸이의 자태가 딱 아줌마야" 라고 번번이 놀리기를 시작했어도 어디가면 아가씨 라는 소리도 종종 듣고 (이젠 가물가물 해지려하지만...)
아직까지도 처녀때 입은 치마! 입고다니걸랑요.
이제 슬슬 그 몸매 유지하기가 힘들것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가기는 하지만서도요
하지만 이렇게 아줌마라는 단어가 생소하지않고
또 가끔은 신랑있는 여자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도 하고
<남들 다 쓰는 가계부 나도 할 수 있다! 열심히 적어보자>라고 새해목표도
든든히 세워 놓고 2001년 1월 결산도 하고....
그런데요 아직까지도 잊혀지지않는 신혼의 추억
그 추억만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고 후회가 되고...
또 슬기롭게 대처해 나간것 같으면서도 멋지게 속아넘어간것 같고...
여하튼 굉장히 찜찜하고 꼬리꼬리한 일이 있어 이렇게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의 신랑은 경찰공무원인데 제 차를 도둑맞는 바람에 서로 만나게 되어
동네주민과 파출소 순경아저씨라는 기이한 인연으로 300일 연애를 하다가
2000년 5월 21일에 결혼에 골인을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늦은밤이면 꼭 집에 들어가야했고
가끔 동료들이랑 술마시는 일이 있으면 꼭 일찍 술자리 끝내고 저에게로 와서
눈(?) 한번 맞추고 집에 들어가고 집에 들어가서는 잘 들어갔다고 전화하고...
이렇게 아주 착실한 대한의 청년이였답니다.
근데 이 사람
결혼하고 열흘째 되는 날
"자기야 오늘,
결혼도 했고해서 동료들이 술한잔 내라네 조금 늦을것같아
빨리 들어갈께"
라며 저녁 술자리를 일근날 아침에 은근히 미안한듯 이야기 하지 않겠어요?
참고로 신랑은 경찰관이라서 일근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당번은 저녁9시부터 그다음날 9시까지 그리고 비번 아침 9시에 퇴근하고 그다음날 9시까지 쉬는 세가지 근무를 교대로 이어서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새댁인 제가 흔쾌히 이해를 해 줬어요
집들이를 기다리다 못한 동료들이 술한잔 내라고 하는군하며
술값까지 조금 챙겨서 출근을 시켰죠
저녁 9시 "난데 이제 퇴근하거든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들어갈께"
밤 11시 "자기야 나야 조금 늦어지네 미안해 빨리 들어갈께"
밤 12시 "이야기가 조금 심각하네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할께"
새벽1시 "다 끝나가 먼저 자고 있어"
새벽 3시가 되니까 핸드폰 연결이 안되는거예요

왜 이런 비서 둬 보셨죠?
"지금은 전화를 받을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

새벽 4시,5시,6시
해는 벌써 떴고 저도 자는둥 마는둥
화도 나고 걱정도 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지 생각도 나질 않구요

1단계작전 일단은 시댁에 알리자
그래야 첫번째 부부싸움이 일어나더라도 내편을 한명이라도 더 만들어 놓지
이런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울먹이며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어머니 그이가 어제 안 들어왔어요 흑흑흑"
물론 일러바치는것같아 좀 그랬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야지 않겠어요

2단계작전 주위의 많은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얻고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서 상의를 하자
일단 회사에 출근을 해서 선배언니 회사동료 여러명에게 물어봤는데 가장 충격적인 조언은 우리 사장님!
집에가서 신랑이 오면 거실에 있는 TV를 던지래요
던지는건 TV가 커서 힘이 안되니까 떨어뜨리라는거죠
그러면 신랑이 겁도 먹고 사실 비싼 TV가 아까워서라도 다시는 외박을 안 한다나요?
우리 선배언니 무조건 집에서 내보내래요
가방에 짐 다 꾸려놓고 들어와서 "여보 미안해"하더래도 아무소리 말고 가방들게해서 내보내래요 "친구가 좋으면 거기가서 살아" 하면서요
그래야 그 버릇 고친다구요

3단계 친정 엄마에게 알려야죠?
혹시나 내가 집을 나오는 일이 벌어지면 합법적으로 있을때가 필요하더라구요
시댁도 생각을 했지만 아무래도 지은죄가 있으니 처가에 오기가 더 두렵고 힘들것 같았거든요
친정엄마왈
"절대로 너 니가 집나오면 안된다 알았지?
니가 왜 나와. 나가려면 노서방이 나가야지"

그렇게 출근해서 아침을 보내고 토요일 12시를 넘기니까 이젠 하늘을 치솟던 화는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슬슬 걱정이 되더라구요
혹시 어디 사고라도 났나? 이렇게까지 연락이 없을리는 없는데
혹시 병원에? 아니아니 그래도 태권도가 2단인데...
혹시 집에 들어왔나? 내가 무서워 전화도 못하고 있나
여러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가는데...
점점 안 좋은 생각만 들더라구요
오후 1시 퇴근
불이나케 집으로 달려갔지만 아무도 없었어요
그날은 경찰서에 비상이라서 오후 2시까지 파출소에 출근을 해야하는데 2시가 되어도 신랑은 행방불명
어제 함께 술마신 사람들은 다들 새벽1시넘어 헤어졌다고하고
우리 신랑 어디가서 찾죠?
제발 몸 성히 들어와준다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걱정이 태산이 되어 쌓이는 거있죠?
오후2시 반이되어 신랑이 근무하는 파출소에 가서 울면서
"저기요 우리 신랑이 여기에 근무하는데요 어제 퇴근하고 아직 집에 안 들어왔어요 어떻하죠? 좀 찾아주세요"
그러는찰나 때르릉 울린 파출소전화에 경찰관아저씨가 웃으며 넘겨준 전화
"응 난데 집에 들어와라 집에 와서 이야기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시며 어떻게 달려왔는지 기억도 없이 집에 왔더니
부시시한 우리 신랑
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미안하다" 한마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고 꿀물타다가 주고 물수건으로 얼굴 손 발 다 닦아주고
저녁에 출근해야하니까 빨리 자라는 제말에
갑자기 무릅끓고
"자기야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께 동료들이랑 회식 마치고 중학교 동기를 만났는데 거기서 그만 GO바람이 불어서 마시다가 정신을 잃어서...
깨어보니 여관방인데 오후 2시잖아"

전 정말 아무것도 묻지않고 정말 진심으로 몸 성히 들어와준것만으로 감사하고
그랬는데 우리 신랑 제가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니까 자기가 더 불안하더래요
그렇게 결혼 열흘째 맞이한 남편의 첫번째 외박은 넘어갔지만 전 아직도 그때 제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신랑의 괴략에 제가 속아넘어간것도 같고...
거실에 놓여있는 TV를 보면 돈 번것도 같고...
그 다음부터는 일찍 잘 들어오냐구요?
우리 신랑 열흘이 멀다하고 새벽녘에야 들어와서 얼마나 속을 끓였는지...
어떤날은 아파트 계단에서 자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들어와서
"여보야 나 진짜 12시 되어서 아파트에는 왔는데... 4층까지 올라오기가 힘들어 계단에서 좀 쉬다가 보니..."
이러구요. 그날 아침에 제가 출근하다가 1층 계당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그이의 안경을 발견하고는 사랑으로 가득찬 웃음을 짓곤 합니다.
우리 이렇게 살아요
밤 늦게 까지 술마시는 일도 차츰 나아지고있구요
최창민의 사랑보다 좋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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