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양말과 무좀 그리고 선....
심순정
2001.02.19
조회 24
어른들이 많이 듣는 프로에 저 같은 어린(?)사람이 감히 글을 올린다는게 못내 송구스럽기도 하지만...갑자기 떠오른 웃지못할 일때문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작년 여름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그떄즈음해서..
4년 넘게 사귄 오빠랑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오해가 나중엔 정리될수없는 눈사태를 낳더니...그렇게 저는 난생처음으로
시련이라는 아픔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내려앉아버릴것 같은...가슴이 텅 비어버린것 같은...
24년 살면서 그렇게 힘들었던적은 아마 없었을겁니다.

그렇게 시련의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는 내가 보기에 안됐는지 대학선배가 친구의 동생이라며 번듯한 직장에 외모까지 핸섬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지 뭐겠습니까?
시련을 당해본 사람은 다들 동감하시겠지만 솔로가 됐을때 가장 힘든것이...
바로 남아도는 시간들...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쓸슬함!이 아니겠습니까?

못이기는 척 약속장소를 잡아놓고 한번 기분전환이나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그때부턴 좀 바빠지더군요
머리도 한번 다듬고 치마정장도 한벌 쫙 맞추고...거치장스럽다며 구석으로 내팽개쳤던 귀걸이도 다시 하고...그렇게 약속장소에 나갔습니다.

선배가 먼저 손을 흔들더군요.수줍은 듯 한번 웃어주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습니다.정말이지 한눈에도 뽕하고 갈만큼의 멋진 남자가 앉아있엇습니다.
이쪽을 보면 류시원 저쪽을 보면 장동건을 닮은것 같기도한... 그 우수에어린 눈동자에 상냥하고 류머러스한 말솜씨란.... 검은색 정장에 받쳐입은 회색와이셔츠는
그 사람의 세련됨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란 간사한것이 방금전까지만해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뒤던 내가 이제는 그 사람눈에 어떻게 비치게 될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유쾌한 이야기들이 한창 오가면서,때마침 저녁시간도 다됐고 해서 우리는 어느 조그만 일식집엘 들어갔습니다. 한여름 회는 위험하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그런데...거기에서 부터 산산히 깨지기 사작한 나의 환상들!
신발을 벗고 방으로 향하는 그의 발엔,..십리밖에서도 다보일 연한 하늘색 발가락양말이 신겨져 있더군요. 도무지 어울릴것같지않은 그 양말...
그러나 뭐 워낙 세련된 사람은 앞서가는 법이니깐..."그정도는 뭐"하며 그냥 넘겼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일무렵!

화장실을 다녀오는 제 눈에... 반쯤열린 방문사이로 결코 봐서는 안될 그런 장면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무좀이 있었는지 양손으로 왼쪽 엄지발가락 사이를 마구 문지르는...그래도 가려운지 손톱으로 집어뜯으며 긁어대는...그러면서 비치는 그의 그 시원한 표정이란...

"아 정말 저런 더티함만 아니라면 완벽 그자첸데...우와 저렇게 간지러울까?"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다 흠흠 헛기침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담부터 저의 눈은 발을 문지르던 그 사람의 손을 응시햇고 급기야 그손으로 그는 굴이며 회며 후식으로 나온 홍어알이 쌓인 김말이를 맛있게 먹더군요.

저의 식욕은 이미 바닥을 기고 있었고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내 눈에 비친건 그 사람의 엄지 발가락 양말 사이로 보이는 출혈인듯 싶은 핏자국이... 글쎄 피가 날때까지 긁었었나 보더군요.
처음의 그 세련된 모습들은 열심히 발을 긁으면서 시원해하던 그 모습과 겹쳐져 정신이 몽롱해지더군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저의 선은 끝이 났습니다.

친구는 그러더군요
무좀 좀 있으면 어떠냐구...아직 너가 누군가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서 그런걸꺼라구...근데 영원히 누군가를 다시 만날 준비는 안될것 같습니다.
올 가을, 예전 오빠랑 결혼을 하게 될것 같습니다.
어찌 어찌 하여 우여곡절끝에 예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만나고 있답니다. 요즘 오빤 어떻게 프로포즈를 해야 내가 두말없이 넘어 올까 고민중이래요.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열심히 사연을 보내는듯하더니.. 보낼때마다 퇴짜를 맞더군요. .
그런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은근슬쩍 넘어가죠야겠죠?
올가을 결혼식날 청첩장 보내드릴께요.
바쁘지 않으시면 저의 이쁜 얼굴 보러 오세용
건강조심하시구 언제까지나 친근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모습 부탁드릴께요
Say Me -클릭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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