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이번엔 만납니다.
윤완숙`
2001.02.18
조회 17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너무너무 축하받고 싶은 일이 있어 이렇게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제 친정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정말 많이 죽하해 주세요. 제 아버지께서는 이번 3차 남북이산가족방문단(북측에서오시는분)에서 돌아가실줄말 알고 계셨고 사진 한장도 없으셔서 얼굴조차 기억이 희미하시다는 큰아버지를 다가오는 26일이면 51년만에 반나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충남 예산군 삽교라는 아주 작은 시골동네에서 여러형제가운데 빈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셨지만 여러명의 형제들은 어린시절 모두 몹쓸병으로 돌아가시고 이번에 북측에서 오시는 큰아버지와 고모한분,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3남매뿐이셨다 합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 12살위인 큰아버지와 꿈에 부푼 큰 약속을 한가지 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면 삼십리이상 군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귀했던 자전거를 사서 보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 군청같은 곳에 취식하시는 것이 꿈이셨기에 십리이상을 걸어서 다니셨던 초등학교였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여 반에서 1.2등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초등하교 5학년시절 6.25가 터지는 바람에 큰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 가셨고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같이 끌려 가셨다 돌아온 산비탈에 사시는 아저씨께서 큰아버지께서는 끌려가시는 도중에 오산부근에서 큰 폭격이 있었는데 그때 사망하셨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물론 믿고 싶으시지는 않으셨겠지만 아버지께서는 논한마지기 제대로 없는 빈농의 아들로 그저 그렇게 모든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전부인 학력으로 많이 힘들게 사셨다고 합니다. 그후, 아버지는 나이가 늘어 엄마와 결혼을 하시고 군대를 가게 되셨고 그곳에서 잠시 배운 망치질이 평생의 직업으로 지금까지 40여년동안 4남3녀라는 많은 우리형제를 5명씩이나 대학교육을 받게 하셨고 다가오는 27일에는 남동생이 서울대의대를 졸업하게 되어 넉넉하게 사시지는 못하지만 주위 분들의 부러움을 사시곤 합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 6.25때문에 그냥 그렇게 너무나 안타깝고 누구조차 원망할수 없는 상황에서 그만 두신 배움이 한이 되셨던지 우리 칠남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시지는 않으셨지만 "너희들만은 내가 쪽박을 차더라도(거지가 되더라도 라는 뜻) 너희들이 공부만 하겠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공부를 시켜주시겠다"고 여러번 강조하신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대학2년을 마치고 군대에간 막내남동생도 있습니다. 지금 연세가65세의 노인이시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저곳 공사장을 다시며 쉴새없이 목수일을 하셨습니다. 그던데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가시게 된 병원에서 위암선고를 받으시고 서울의 큰병원에서 위를 60[%]를 잘라내시는 대수술을 하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되어 이제는 거의 정상인처럼 식사도 하시지만 아직도 건강이 많이 걱정됩니다. 저는 요즘 남편과 저녁상을 물리고 술을 한잔 마실때면 "통일을 위하여"를 위치며 건배를 하곤 합니다. 정말 빨리 통일이 되어서 큰아버지와 정확한 가족사항은 모르지만 사촌형제들도 자주 왕래하며 만나고 싶습니다. 아마, 오늘밤에도 제 아버지께서는 큰아버지 만나실 생각에 제대로 밤잠을 이루시지 못하질 것입니다. 아버지, 진심으로 큰아버지와의 만남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큰아버지, 아버지 두분 모두 통일될 그날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수원에서 막내딸 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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