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적인 구호 활동을 펼친 하북면의 공무원들
구승철
2001.02.18
조회 20
글재주라고는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로 동시 몇 편 그것도 다른 사람의 시를 요리조리 짜깁기하여 제출해 본 게 전부인 제가 이렇게 방송국에다 투고를 감행한 것은 지난 1월 6일 새해 첫 산행에서 겪었던 참으로 가슴 아프면서도 따스한 사연을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번 산행은 국립공원 속리산이 그 목적지로 여회원 2명이 포함된 회원 22명이 저녁 9시에 부산을 출발, 7일 새벽 2시경에 경북 상주시 하북면 소재의 눌재에 도착했습니다. 바람에 눈발이 간간이 섞여 날렸지만 회원 모두가 산행에는 이력이 난 사람들이라 아무런 우려 없이 오히려 첫눈을 맞은 아이들 마냥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어둠을 헤치며 밤티재를 지난 산행이 속리산 문장대로 이어지는 즈음부터 어느 샌가 짙어진 눈발이 시야를 가리고 바람마저 드세게 불기시작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일행은 목적한 비재까지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문장대 휴게소에서 아침이나 들고 하산하자고 의논을 모았습니다. 그러고서 저를 포함한 선두의 4명이 문장대휴게소에 먼저 도착, 막 휴게소를 들어서는데 속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휴게소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용인 즉, 후미에 속해있던 우리 동료 한 사람이 탈진해 쓰러져 119 구급대에 구조요청을 해왔다는 것이고, 구조대를 보내려 해도 눈 때문에 이미 길이 막혔고 악천후라 구조헬기를 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니 우리 회원들이 자구책을 찾아 구조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 네 명은 눈 속을 달리다시피하여 현장으로 가 보니 동료는 이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고 곁의 동료들은 당황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너나없이 서둘러 옷을 벗어 동료를 감싸 안고 따뜻한 물이며 청심환 같은 약이며 갖은 응급조치를 취해 봤지만 동료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빨리 휴게소로 환자를 옮기는 것만이 동료를 소생시킬 길이라 생각되어 환자를 업고, 들고, 안고 진전을 해보았지만 눈보라가 몰아치는 암릉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실신한 사람을 옮기자니 겨우 100여 미터를 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했지만 우리는 점점 지쳐갔고 동료의 몸은 점차 차갑게 식어만 갔습니다. 더욱 다급해진 우리는 눈 위에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놓고 동료의 전신을 주무르며 흔들어 깨웠지만 동료는 끝끝내 눈을 뜨지 않았고, 결국엔 우리도 추위와 초조감으로 탈진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평시대로라면 문장대휴게소와 20여분의 거리에 불과한 곳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상황은 최악으로 마감되었고 고인이 되어버린 동료를 현장에 둔 채 죄인이 되어 휴게소에 되돌아 와보니 119 구급대와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상황을 묻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리산 국립공원관리소의 하북 분소장님과 직원 4명이 4시간 전에 출발했는데 이제야 닿았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셨습니다. 그분들은 동료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마치 자신들의 잘못이기라도 한 양 악천후를 원망하며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평소 공무원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던 저로서는 속으로 좀 뜻밖이다 싶었는데, 이것은 서곡에 불과 했습니다. 더운 음식으로 몸을 대강 추스린 우리회원들은 저를 포함해 4명만 사고수습을 위해 남고, 나머지 회원들은 먼저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뒤에 남은 우리는 현장으로 관리소 직원분들을 안내하고 들것에 시신을 모신 그분들을 도와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눈이 허리에 차고, 어둠까지 내린 산길에 시신까지 들것에 모셨으니 엎어지고, 자빠지고 얼마나 고통스런 하산 길이었을 지는 산행을 해보지 않은 분이라 해도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야 이 고생을 자청한 격이었다지만, 단지 관리원이라는 직책으로 하여 그 같은 고생을 하는 분들이면 무리한 산행을 감행해 사고를 낸 우리에게 원망 한마디 쯤 할 법도한데, 이들은 그 와중에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감동적이었지요. 어찌어찌하여 하북 관리분소에 도착하니 고맙게도 119구급대와 소방차가 눈 속을 아랑곳 않고 달려와 산 아래에 대기해 있었습니다. 하북 소방파출소의 소장님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는 우리를 위해 이웃 주유소에다 특별히 청을 해 따뜻한 식사를 마련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마땅한 숙소가 없는 그 곳 사정을 설명하고는 면사무소에 연락해 그 곳 차량으로 우리들을 우리 차량이 있는 갈령 아래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공무원들에 대해 가졌던 잘못된 선입견이 싸악 씻어지는 더할 수 없이 신선한 충격이었고 친절이었습니다. 이후에 사인 규명조서 작성 차 들린 하북 파출소에서도 친절은 한결 같았습니다. 일 처리를 신속히 해주려 애 써시는 게 역력했고, 따스한 차를 건네며 위로의 말씀들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회원들과 합류 후 들어보니, 하북면의 공무원들은 우리만 감동시킨 게 아니었습니다. 앞서 하산했던 우리 회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분들은 하북면사무소의 구호를 받았는데 면사무소에 이르니 면장님 휘하에 비상근무에 돌입한 면사무소직원들이 미리 따뜻한 식사와 차를 준비한 채 맞이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따뜻한 대접과 위로로 지친 몸과 놀란 가슴을 잠시 다스리고 있자니 이번엔 다시, 길이 끊어져 난감해진 우리회원들의 숙소문제를 앞서 걱정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갈령 너머에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대기 중이라고 하였더니, 회원 모두를 면사무소 차량으로 고개까지 태워주시고는 귀가길에 길에 대한 염려까지 얹어 친절하게 배웅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만해도 우리 공무원 만만세를 부를만 하지만 한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하북 공무원들의 친절이 너무도 고마워서, 우리 모임의 회장님이 죄송함과 감사의 표시로 추운 날 고생들 하셨는데 더운 물에 몸들이라도 녹이시라며 말 그대로 목욕비를 담은 작은 봉투를 전하려 하셨더랍니다. 그런데 속리산 국립공원 하북관리분소에서도, 하북소방파출소에서도, 하북파출소에서도 우리 하북의 공무원들께서는 한결같이 당연한 우리의 책무라며 거절을 하셨답니다. 정말 든든한 ‘우리의 공무원’들이었습니다.
만약 이 사연이 방송된다면 더 없이 친절하고 헌신적인 구호를 해 주신 속리산 국립공원 하북분소, 하북면사무소, 하북소방파출소의 직원여러분과 하북파출소의 경찰관들께, 그리고 직접 나서셔서 모든 것을 챙겨 주신 하북면 면장님께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원 모두는 ‘하북’이라는 단어를 정겹고도 따듯한 단어로 기억하게 해 준 여러분들을 오래오래 잊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나라살림 내살림 할 것 없이 어렵고, 날씨마저 얼어붙는 요즘, 이 사연 들으시니 어떠신지요? 가슴 한 켠이 좀 훈훈해 지셨는지요? 저만 갖고 있기엔 벅찬 감동이어서 방송국에다 사연을 띄워봅니다.
015B-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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