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을 뻔 했는데...
권정운
2001.02.18
조회 16
불이 났어요. 우리 아파트 10층에 불이 났어요.
우리는 바로 위 13층에 삽니다. 글쎄 아침 8시쯤에 연기가 솔솔 어딘가에서 들어오는거에요. 7살난 큰 아이가 연기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을 설마하며 머리를 감으러 욕실로 들어갔어요. 한참 머리를 감고 나오는데 연기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뒷베란다, 앞베란다 뚫려있는 창문은 모두 연기가 쏟아져 들어오는거예요. 그제서야 화재라는 것을 깨닫고는 공포에 사로잡히더라구요. 아이 둘을 데리고 우선 제 안경을 찾았어요. 그런데 아이와 기침을 해대면서 안경을 어디다 두었는지 생각이 안나는 거예요.
"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울먹이며 여기저기 헤매이다 갑자기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강한 의무감이 팍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거에요. 그러니까 안경 위치도 생각났고, 전보다 더 침착해졌어요. 우선 얼른 옷을 찾아 입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집안 연기보다 더 새까만 연기가 확 덮쳐들어오는거예요. 급히 현관 문을 닫고 다시 생각을 가다듬으며 그래도 나가야 산다는 일념으로 저만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가 엘리베이터를 살폈어요.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멈추어 있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를 불러놓고 들어가서 큰 아이에게는 숨 쉬지 말라고 이르고 작은 아이는 강제로 입코를 막았어요. 에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안은 공기가 너무 신선했어요. 아무리 산공기가 좋다 시골 공기가 좋다 해도 그 순간 그 안의 공기는 여지껏 맡아보지 못했던 너무나 깨끗한 공기였어요. 드디어 1층으로 탈출 1층 복도에는 물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려오고 있고 밖으로 나왔더니 이미 대피한 사람들과 방송 카메라 소방관이 보였어요. 너무 감격이 되어 울음이 쏟아져 나왔어요. 방송 카메라가 연신 저희들을 비추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나중에 제 몰골을 보니 머리 감고 나와 머리는 삼발에다 아무렇게나 입은 옷과 그와 같은 두 아이들... 참으로 과관이었죠.
남편이 미국 출장가고 없는 불과 열흘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남편이 없으니까 더욱 서럽더라구요. 나중에 그을림으로 우리도 피해를 봐서 보험회사에서 나와 보상하며 이것 저것 완전히 수습하고 나니까 남편이 돌아왔어요.
" 글쎄, 그랬다며? 처남한테 들었거든 수고 했었네."
퉁 하고 한마디 ''수고했네'' 로 죽음도 생각해봤던 그 상황이 덮어질 수 있다니 상황 설명을 제대로 못한 동생도 원망이 되더라구요. 정말 제겐 꿈같은 일이었는데....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정말 죽을 뻔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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