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의 아버지
김은경
2001.02.17
조회 25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자그마치 10년이네요..
열일곱이던 제가 스물일곱..딸아이를 가진 엄마가 되었구요.
동생 훈이는 대학생..철없던 막내둥이도 회사생활 열심히 하는 성인이 되었구요.
참..돌아보면 모진 세월..잘 견디고 이만큼 안정되기까지 아버지의 헌신이
새삼 고마와 집니다.

술이 취하면 무슨일이든 트집을 잡아서 피를 볼때 까지 폭력을 휘두르던 아빠.
엄마랑 집에서 쫒겨나와 여인숙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빠가 나간새 책가방을 챙겨가지고 등교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는 아빠..퉁퉁부은 몸으로 붓기빠지는약,
신경안정제등을 먹고 다음날 아침이면 우릴 위해 아침상을 차려주고
엄마는 식당일이다 파출부다 힘들게 일하며 하루도 제대로 쉬었던 적이 없었답니다. 견디다 못해 가출하기도 몇차례..번번이 우리들 걱정에 다시 돌아오시곤
했던 엄마.
그리고 다시 그런 폭력을 견디며 사시다 내가 중학교 3학년때 가출하신 뒤론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죠.

아버지의 폭력은 어린 세남매에게 견디기 힘든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방패막이가 되어주시던 엄마가 우리남매를 버리고 떠났다는것에
난 충격을 받았고,,원망을 하였습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생각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술취하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생들과 바깥을 헤메다 아빠가 잠든 새벽에 들어가고 추운 겨울엔 남의집 옥상에 널어놓은 덜 마른 담요를 덮고
아빠가 잠들기만을 기도하며 추위에 떨었던 기억도 납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견디다 못해 동생들과 가출을 해서 외가집에서
엄마있는곳을 알려주어 부산에 살고 있는 엄마를 만나게 되었죠.
이미 엄마는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 살고 계셨는데 ..그나마 단칸방이라
세남매가 다 같이 살기엔 너무 협소했습니다.
저는 구미에 있는 산업체 부설학교에 전학하기로 하였고,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답니다.
어린나이에 엄마가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던 거였죠.
막내는 그때 열두살이라 금새 아버지라 부르며 잘 따랐지만..
둘째와 저는 그렇질 못했습니다.
저는 엄마와 같이 구미에 저를 보러 오신 아버지를 가방을 던지며 가라고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기도 했답니다.

생각한것보다 열배는 힘들것이다 각오했던 공장일은 백배 천배나 힘들게
느껴졌지만 아빠의 폭력에서 벗어나 맘편하게 공부하고 일할수 있다는것에
행복했답니다.
그곳에서 만난친구들은 하나 같이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어서
내 자라온 환경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끼게 되었고,
땀흘려 일하고 돈을 벌어보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사셨는지
뼈져리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나는 엄마와 화해를 하였고, 1년여가 지나 동생들을 보기 위해서 집을 찾았습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엄마얼굴..
난 새삼 .울 엄마가 저렇게 이뻤구나..생각하였답니다.
깡마르던 엄마 얼굴에 살이 붙어 있고 막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웃는모습...
''아 ..우리 엄마도 저렇게 웃을수 있구나.''
그제까지 친아빠와 사는동안 늘 우울하고 퉁퉁부은 얼굴이거나
짜증을 잘 내던 엄마..울기도 잘 울던 엄마..
그리고 막내동생은 어릴때 제대로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였던지
도벽이 있었는데 아버진 꾸짖거나 때리는 대신 원하는 것을 사주고 다독여
그런 손버릇을 고치시는걸 보고 점차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엄마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힘든일 안시키려 하시고 살림만 하게 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엄마가 이제나마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워했던 맘은 풀렸지만 여전히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절 서운해 하셨죠.
결혼하면 아버지라 부를께요..하고 얘기했었죠.
이바지 음식들고 시댁으로 같이 와주셔선 나를 붙잡고
니가 정말 내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
이제 딸아이도 낳고 조금은 능청스러워 져서 아부지..하고 부를수 있게 되었죠.

아버지..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하시고 더불어 저희에게까지 사랑을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도 철마다 손녀 옷까지 챙겨 보내주시고...
잘해드린다 잘해드린다 하면서 그렇게 못하는 이딸..너그러이 봐주세요.
그러나 아버지..저에게 아버지는 아버지 한분뿐이랍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 생각일거구요.
서운하게 해드린적이 있는데..것두 다 아버지를 정말 편하게 느끼기에
그랬던 거랍니다. 용서하시구요.

추운 날씨에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계란..계란을 외치고 다니실 아버지..
어서 고생을 덜어드려야 할텐데.....
아버지..이제사 감사하다 고맙다 그런 말을 하네요.
그리고 정말 ..사랑합니다.


김현성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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