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하고도 12월말! 저는 동창들과의 모임,거래처사람들과의 망년회모임, 친구들과의 모임 등등으로 술을 안 마시고 들어 온 날보다, 술에 찌들어 들어 온 날들이 더 많은 한달을 보냈습니다.
우리 아내는요. 제가 술 먹고 들어오는 것 보다 제가 술값을 몽땅 내고 들어오는걸 더 무서워하는 여자입니다. 솔직히 사회생활 하다보면 제가 술값을 낼때도 있고, 또 저같이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내기 싫어도 할 수 없이 내야하는 때가 더 많은게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제 아내는 그걸 이해 못하는 겁니다.
하긴 제 아내가 보통 짠순이가 아니걸랑요. 돈이 한번 제 아내 손안으로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를 정도라니까요. 결혼 전엔 그런 아내가 좋아서 결혼했지만 결혼 후에는 너무 악착같이 그러는게 가끔은 제 자존심을 구길때도 있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만큼 살아온 것도 다 제 아내 덕인걸 전 압니다.
하지만 그날의 그 사건만큼은 정말 끔찍하더군요.
때는 작년 12월 24일날! 크리스마스날이었습니다. 제가 하도 밖에서만 술을 마시니까 참다못한 제 아내는 제 친구들을 모두 집으로 초대해놓고 음식을 장만해 놓았습니다. 원래 짠순이인 제 아내 성격을 아는지라 저도 많은 음식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량진 수산시장 앞에 살면서 그 흔한 회 한 접시 없는게 말이 안된다 싶어서 아내 몰래 광어랑 도다리로 회 몇 접시를 떠다 놓았지요.
그런데 아내는 그런 저를 부엌으로 몰래 부르더니 잡채며 찌개며 먹을게 많은데 왜 생돈 들여 회까지 떠놓느냐며 잔소리를 하는게 아닙니까? 저는 친구들도 있고 해서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아내가 조금은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술이 오고, 가고 어느 정도 기분 좋게 취한 친구들은 밖으로 나가 2차를 하자고 했고 저도 그러자며 동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친구들이 제 아내에게도 같이 가자는게 아닙니까? 제 아내는 빙긋이 웃으며 따라나왔습니다.
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습니다.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첫차에 몸을 50479;고''라는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리를 잡은 우리는 소주와 골뱅이무침, 해물탕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잠시 실례하겠다며 밖으로 나가더군요. 화장실이 가게 안에 있었던 터라 저는 밖으로 나가는 아내가 이상했지만 아내는 금방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입고나간 잠바가 갑자기 두둑해져서 들어오는게 아닙니까?
"여보! 잠바 안에 뭐 있어? 갑자기 뚱뚱해졌네?"
"아...아...아니에요."
아내가 말까지 더듬으며 아니라고 그러는게 이상했지만 아니라니까 더 물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각자 소주 한병씩들은 마셨을까요? 안주도 바닥나고 해서 저는 술과 안주를 더 시키려고 주인을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아내가 그런 저를 급히 말리더니 잠바자끄를 쭈욱 내리는게 아닙니까?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내의 잠바 안에선 골뱅이와 번데기통조림이 나오고, 종이팩소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게 아닙니까? 저와 제 친구들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런 우리를 보며 아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술값, 안주값, 너무 비싸니까요. 안주는 이 통조림 따서 드시고, 소주도 이것들 드시면 되겠네요."
저요. 갑자기 너무너무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용광로처럼 화끈화끈 거리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재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술집주인이 볼세라 얼른 그것들을 뜯어서 접시에 담고, 소주팩들은 따서 빈 소주병에다가 옮겨 담았습니다.
그날, 아내는 술과 안주가 떨어질만 하면 밖으로 나갔다 왔고, 그럴때마다 술과 안주는 끝이 없이 나왔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렸지만 제 친구들은 도리어 그런 저를 말렸습니다.
결국 그날 총 술값이 얼마 나왔는지 아십니까? 5만원도 안되라고요. 하지만 저희가 마신 술과 안주는 그 술집시세로 아마도 30만원어치는 넘게 먹었을 겁니다. 아내 덕분에 싸고 배터지게 먹었지만 제가 그 술집주인한테 들킬까봐 가슴 졸인 걸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답니다.
그런데 얘기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그 다음날, 저는 지끈지끈거리는 머리를 안고 저희 집에 놀러 온 제 친구 한명과 함께 또 다시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밖으로 나가려는 저를 붙잡고 이러더군요.
"어제 그집으로 가. 알았지?"
저는 아내가 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기도 귀찮고 해서 친구와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단골인 그 술집으로 발길이 가더라고요. 저와 제 친구는 그 술집으로 들어가 또다시 소주를 마셨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제 휴대폰이 울렸고, 아내의 목소리가 전화기로 퍼져나왔습니다.
"여보, 난데.... 그 술집 화장실 남녀공용이잖아? 오른쪽 양변기 있는데 위쪽에 보면 보일러관이 있는데 거기 뒤쪽으로 손 넣어봐."
저는 아내의 전화를 끊고 화장실로 가서 아내가 말한대로 오른쪽 양변기 보일러관 뒤쪽에 손을 넣어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관 뒤에선 소주팩 5개와 골뱅이 통조림 1개, 새우깡 한봉지가 숨어있는게 아닙니까?
하여튼 아내 덕분에 그날도 저와 제 친구는 싸게 술을 마실 수 있었지만 제 아내 같은 사람만 있다면 모든 술집들 문 닫는거 아닌지 심히 걱정되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제 아내 그리 밉지는 않지요? 저, 이런 아내 덕분에 돈 쓰고 싶어도 못쓴다는거 아닙니까? 그럼,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요.
god-작은 남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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