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또래 여인들은 주부라는 이름과 함께 시장바구니가 더욱 어울릴 시기에
제게 책가방을 들려준 저의 남편을 소개합니다.
5남매의 맏며느리 생활을 하던 제 가슴속에 아무도 모르는 작은 소망하나..아니 어쩜 너무나 간절한 소망이었을지도 모를 학업의 한!
초등학교,
중학교,
그 다음에 써야할 고등학교 졸업장이 제게 없다는 사실이 늘 제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지요!
매년 2월과 3월은 유난히도 저의 마음이 아파 왔지요!
철부지처럼 많은 아이들은 지겨운 듯이 학교를 졸업과 함께 떠나고
또 새로운 학교에 너무나도 쉽게 입학을 하는데 저는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었기에...!
IMF의 첫 희생자로 인생의 홍색신호등에 따라 잠시 멈춰있던 힘든 남편!
결혼하면 이력서를 쓸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명예퇴직 앞에 저는 무엇이라도 해야했습니다.
또 다시 너무나도 쓸게 없는 이력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대졸 출신들도 직장을 구하기 힘든 IMF시대에 중졸학력으로 끝나는 이력서를
내밀 곳이 없다보니 학업에 대한 가슴앓이를 또 앓고 말았지요!
남편이 힘겨워 할 시기에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저의 초라한 이력서로는
..한숨만 나오더군요!몇날 며칠을 고민하며 이불 속에서 울었지요!
남편은 제 속마음도 모르고 자신이 집에서 놀고 있어서 속상해서 그런 줄 알고
너무 미안해했습니다.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학업의 한을 꺼내었지요!
남편은 그런 아픔을 솔직하게 말해주어 너무 고맙다며 때늦은 저의 고교 입학을 허락해 주었고 고교생활 내내 기댈 언덕이 되어 주었습니다.
남편은 퇴직 한달 만에 다시 그 성실성이 인정되어 같은 직장에 연봉제로 근무하게 되었지요!
시댁에다는 며느리가 직장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해 주었고
물론 두 아이에게도 엄마가 직장에 다니니까 너희가 엄마를 힘들게 하지말고
도와달라고 해주었습니다.
학교에 지각할까봐 매일 아침상을 차려주기만 하고 아침을 거르고 나가는 아내를 아침 먹고 가게 하려고 아이의 머리도 감겨주고 또 설거지까지 해 놓고 출근해 주던 남편!
돈 아끼느라 점심 거를까봐서 학교앞 식당에서 파는 식권을 사라며 식비를 건네고 또 납부금을 남들보다 먼저 내밀고..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초등학교 1.2학년 두 아이는 너무나도 대견스럽게
엄마보다는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잘 견뎌 내주었습니다.
2001년, 올 2월 15일
제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날!
하늘도 너무 감격해서 감정조절을 못했는지 졸업식 날에는
32년만이라는 폭설이 내렸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적게는 10대에서부터 60을 향해 가는 사람들까지 다 모여
사제라는 이름으로, 또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기에!
우리의 고교졸업식은 더욱더 의미 있고 소중한 날이었는데..많은 축하객들이 폭설로 인해 길이 막혀 오지 못하고 조금은 쓸쓸한 졸업식을 치러야 했지요!
물론 제 곁에서 가장 많이 축하해 줄 것 같았던 남편 역시,
아내의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직장에서 조퇴를 하고 서둘렀지만 때아닌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은 졸업식이 끝났다는 제 전화에 축하한다는 말만 남기고
그냥 집으로 향하고 말았답니다.
그 날 여동생과 친정어머니가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큰딸과 큰언니를 위해 꽃다발을 사 들고 왔습니다.
저는 동생이 건네준 꽃다발을 남편이 늦게나마 졸업식장에 오면
남편의 품에 안겨주며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 작은 소망은 눈 때문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고마운 남편!
함께 잘 살아보자고 맞벌이하는 것도 아닌데 묵묵히 아내를 위해 기도하며
친정아버지 처럼 아내의 건강을 챙겨주며 눈물의 고교졸업장을 안게 해준 제 남편에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를 그리고 싶습니다.
늦은 고교생활을 하며 썼던 서툰 저의 글들이 여러 군데에서 상을 받게 되어 전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상 덕분에 대학 문예창작과에 특별전형으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염치없이 저는 또 남편에게 대학납부금까지 부담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해보라고 ...고교생활이 금방 지나갔듯
대학도 금방 지나 갈 거라고 권해주는 남편에게 어떤 미사여구로 칭찬을 해 주어야 할지..!
저는 지금 좋아하는 글 쓰기 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대학 입학식을 앞둔 요즘 너무 행복한데..아직도 며느리가 직장에 다닌 줄로 알고 계시는 시부모님을 속이고 다녀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롭고
남편에게도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요즘은 감정조절하기가 좀 어렵네요!
글이 좀 길어졌지요?
우리 남편 이 글로나마 칭찬해 주고 싶어요!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겠지만
아내를 공부시키는 남편은 칭찬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동화속으로:: THE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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