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넘기힘든 벽이시여
홍석원
2001.02.15
조회 19
십여년만에 찾아온 매서운 한파가 전국을 꽁꽁 얼려놓았어요. 뉴스를 통해 보니까 전국의 산하가 냉동실에서 막 꺼낸 물건마냥 온통 꽁꽁 얼었더군요.
아무튼 지금부터 우리 모자의 애증사 27년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뱃속에서부터 저희 어머님을 엄청 괴롭혔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발길질에, 평상시 비유가 약해서 잡수시지도 못하는 ''순대'',에 ''족발'', 에 ''곱창'', 심지어는 ''뻔데기'' 까지 이상한 음식만 제가 그렇게 찾더랍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에는 없는데 아마 뱃속에서부터 저희 어머님께 제가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게 별난것만 찾아먹던 제가 하루종일 생사를 오가는 어머님의 사투 끝에 세상에 나오긴 했는데 어머님이 저를 낳으시다 중간에 잠깐 쉬셨다나.... 아무튼 전 자세히 보면 볼링핀같은 두상으로 세상에 태어낳습니다. 말이 그렇지 머리가 동그래도 오래 누워있으면 머리가 아픈 법인데, 볼링핀 모양의 머리로 유아기를 보냈으니... 하지만 어머니께서 제 머리를 애기때 예쁘게 만줘줘서 지금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두상이 되었지요. 저 가끔 꿈에서 제 머리가 볼링핀 모양의 우주인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참 아찔하더군요.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미운 일곱 살, 본격적으로 어머님과의 애증의 시작된 해이지요. 저에겐 위로 한 살 터울의 누님이 있는데 제가 일곱 살 되던 해에 누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치룬 시험성적이 좋았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노트와 필통을 상품으로 타오게 됐지요. 문제는 제가 다짜고짜 그 노트랑 필통을 가진다고 밤새도록 울더니 결국엔 누나의 상품을 뺐더랍니다.
문제는 아버님께서 학교에서 준 상품을 동생에게 양보한 딸이 하도 기특해서 누나에게 선물로 분홍색 원피스 잠옷을 사다 줬는데 그것까지도 제가 입겠다고 이틀 저녁을 울더랍니다. 결국 마음 약한 저희 아버지 누나 잠옷이랑 똑같은 원피스 잠옷을 아들인 저에게도 사다 입히셨지요. 지금도 누나랑 똑같이 분홍색 원피스 잠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앨범에 있지만서도요.
그때부터 저희 어머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대로 나뒀다간 버릇없는 아이로 크겠다 싶더랍니다. 그래서 묘안으로 생각해 내신 방법이 바로 ''눈깔사탕 입에 물리고 줘박기''입니다. 어느 날인가 제가 분명 어머님께 야단맞을 짓을 했는데 저희 어머님 인자하신 모습으로 저에게 오셔서 큼지막한 알사탕을 하나 주시더군요. 어린 마음에 저는 그 알사탕 속에 어마어마한 음모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요. 아무튼 난생처음 보는 큼지막한 알사탕을 얼른 입안에 가득 물고 그 어느때보다 어머님께 대한 사랑이 충만한 눈으로 어머님을 지긋히 바라보고 있는데 저희 어머님 저를 온화하신 얼굴로 부르시더군요. 두 팔을 벌리 시고요. 그래서 저는 아무 의심 없이 어머님의 넓은 품에 안겼고요. 저 그때 참 행복했었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님 저를 좀 도에 지나치게 꽉 안아 주시더군요. 그때까지 저는 아무런 낌새도 마냥 행복에 겨워 있었고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 갑자기 절 무릎에 엎어놓으시더니 제 엉덩이를 인정 사정없이 때리시더군요. 하=))) 큼지막한 알사탕은 입에 있고, 평상시 크게 울어서 할머니께 구원을 요청했었는데, 정말 입안 가득 찬 사탕 때문에 저 아무소리도 못하고, 그냥 흐느끼며, 어머님께 정말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엉덩이가 부르트도록 맞았습니다.
저희 어머니 그 거사를 한달 전부터 준비하신 거랍니다. 아버님이 목회를 하셔서 집밖으로 큰 소리가 안나가고, 할머니의 역성 없이 효과적으로 제 버릇을 고칠 수 있는 묘안.. 그것이 바로 ''알사탕 입에 물리고 쥐어박기'' 랍니다.
그후로도 저 그 방법에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웬만하면 사탕은 절대 입에도 안 물고요, 혹시 사탕을 먹을 일이 있으면 깨쳐서 먹곤 합니다.
간략하나마 저희 어머님께서 제 버릇을 정말 엽기적인 방법으로 고치신 에피소드 하나만 더 소개 드릴께요.
저희 어머니 말씀에 제가 어릴때 단것을 그렇게 좋아했답니다. 심지어는 콜라에 밥을 말아먹을 정도였다는군요. 그러니 어릴쩍 제 이빨이 성한게 하나나 있었겠습니까? 저희 어머니 고심끝에 내리신 결단 ''단것은 이제부터 엄마가 주는것만 먹어라''는 정말 그당시 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강압적이고, 오만한 명령이었던 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말씀에 ''알사탕을 먹일때는 언제고... 지금에 와서는...'' 아무튼 전 그때 무슨 민주화 투쟁을 하는 투사마냥 어머니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기로 했지요. 그리고 제가 살길은 오직 어머니의 독선과, 독재에서 벗어나는 길 뿐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모든 경제권을 어머니가 쥐고 계신데 제가 뭔 힘이 있습니까..!!! 저 그때 알았는데 단것도 맘대로 먹다 못먹으니까 무슨 금단현상 비슷한게 나타나더군요. 손발이 덜덜덜 떨리고, 공연히 불안하고, 나중에는 과자로만든집을 찾아 떠나는 꿈까지 꾸게 되더라니까요..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자 전 주방에있는 설탕그릇을 습격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맘먹은 그날밤 바로 행동개시....호호호!!! 아주 만족스럽게도 비록 백설탕 이었지만 그래도 단 기운으로 굶주렸던 단기운을 보충하고, 이러한 생활이 지속되던 어느날...아!!! 제 평생 절대 잊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설탕을 훔쳐 먹을려고 주방으로 살며시 잠입하는데 까지 성공, 이윽고 설탕그릇 뚜껑을 열고 한입 털어넣는 순간 주방 불이 켜지고, 순간 저는 주방 불이 켜진데 놀란것 보다 더 큰 충격에 놀라게 됐습니다.
저희 어머니 제가 설탕을 몰래 훔쳐먹는걸 다 알고 계시면서 이 녀석을 어떻게 하면 단단히 혼낼까 고민하시던 터에 설탕그릇에 설탕대신 왕소금을 곱게 갈아서 집어넣으셨고, 제가 설탕을 훔쳐먹는 현장을 적발 하실려고 잠복 근무를 서시던 터에 현장에서 저는 보기좋게 검거 됐던 겁니다.
그때 저 한입가득 왕소금 물고 표정관리하랴, 아무 일도 아닌것처럼 그 소금을 다 삼키랴 정말 죽을뻔 했습니다. 그후로 단것 좋아하는 제 버릇도 고쳐 지고요.
어때요? 저희 어머님 정말 대단하지 안습니까?
이제 저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서 군대까지 다녀오고, 이젠 대학교도 졸업하고, 취직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돼니 평생 말썽만 부리던 아들 뒷바라지에 두꺼비등처럼 거칠어진 어머님의 손등도 보이고, 희끗희끗한 어머님의 머리, 누나와 제가 유행이 지나서 안 입고 다니는 옷을 당신은 편안해서 좋다고 입고 다니시는 어머님의 사랑이 조금은 보입니다.
어머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청포도 알처럼 예쁜 옥이 박힌 금반지를 가지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머님께 첫 월급타면 반지랑, 큼지막한 알사탕 한 봉지 사다 드려야겠습니다. 요즘도 어머니 마음 아프게 할 때 많은데, 다시 한번 어머니께 입안 가득 알사탕을 물고 어머니께 엉덩이를 맞아보고 싶군요.
어머니 아들 석원이 어머니 정말 사랑해요. 이 편지가 전국으로 방송되면, 어머니의 고상하신 이미지에는 약간은 손상도 가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듣는 프로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님께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어머니 사랑하고요, 존경해요. 오래오래 사셔서요, 아들 석원이 효도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추운겨울 건강 항상 신경 쓰시고요.
은하수-박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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