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 한살의 직장인이구요. 이제 결혼한지 2년된 새댁(?)입니다.
(우리 어머님께서 애 생길때까지는 무조건 새댁이라고 하셔서 올 명절에도 빨강치마 초록저고리를 입고 돌아다녔읍니다).
전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이 방송을 제시간에 듣지는 못하구요. 대신 매일 저녁먹고 난 다음 기분전환을 위해 인터넷으로 청취하는 진~정한 애청자랍니다.
매일 듣기만 하다가 정말 혼자만 알기 아까운 사연이 있어 보냅니다.
그 때 좀 위험하긴 했지만 듣는 분들에게 많은 교훈이 될 것 같아서 창피하지만 보냅니다. 얼마전 일년 내내 조퇴 한번 없던 튼튼한 제가 아파서 결근을 했습니다. 병명이 뭐냐구요?
사건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
사건당일 남편과 사이좋게 저녁을 먹고 난 후 이상하게 제 배가 아픈 겁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배가 아프다고 했죠. 그랬더니 남편이 진찰을 하더군요. 제 남편이 의사일까요? 천만에요.
참고로 저의 남편인 그(이하 ''그''로함)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그는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셀러리맨이죠. 하지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나름대로 공부한 풍부한 의학상식을 자랑하면서 제(그의 유일한 환자)가 조금만 이상하다 하면 이리 누워봐라. 요렇게 좀 해봐라. 여기 저기를 손가락으로 쿡쿡 쑤셔대다가 뭐 소화불량이라느니 혹은 신경성 장애라느니 하는 진단을 내려 줍니다. 그러면 맹장의 위치도 잘 몰랐던 당시의 저는 그의 처방에 따라 소화제나 두통약 같은 것을 복용하곤 했지요(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했던 순간들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사건 당일로 돌아갑니다.
그 날도 그는 어김없이 진단후 처방을 내렸습니다. 병명은 대장증상.. 쉽게 말하면 변비라는 것이죠.
남편은 일단 약을 복용하기 보다 운동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윗몸일으키기를 했습니다. 한 20번 정도 하니까 배가 너무 아픈 겁니다. 그래서 아프다고 했더니 10번을 더 하라고 해서 더 했는데 배가 더욱 땡겼읍니다(경상도에선 이렇게 말하는데 표준말은 잘 모르겠네요).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이번엔 훌라우프를 주면서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한 것 같다고 더 해야한다고 하데요.
전 아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훌라우프를 돌렸더니 좀 덜 아픈 것 같더라구요.(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파서 감각이 없어진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전 지쳐서 거실에 그대로 뻗었는데, 한참 있어도 처방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느끼자 남편은 제가 아락X(특정상표)을 조용히 건넸읍니다. 그래서 지칠대로 지친 저는 약을 복용하고 누웠는데 그래도 전혀 차도가 없는 겁니다.
너무도 애처로운 목소리로(제 생각입니다만) 배가 아까보다 더 아프다고 했더니 남편이 다시 진찰을 했고 아까와는 달리 매우 당황한 얼굴로 아무래도 대장보다는 소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제가 아픈 부위를 제대로 말하지 않아 오진을 했다는군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그 때 전 싸울 힘도 없고 지쳐서 이번엔 확실하냐고만 다시 물었습니다. 매우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한 그의 표정에 밀려 전 다시 그가 건넨 정X환을 먹었읍니다.
그리곤 좀 진정된 듯하여 침대로 갔습니다만 전 그날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숨도 못잤습니다.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려 새벽녘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문득 거울을 보니 정말 눈이 휑하니 들어갔더군요(상상이 가시죠?).
아침까지 계속되는 설사.. 급기야 전 결근을 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진찰 결과 진정한 저의 병은 바로 장염이었습니다. 의사가 어떻게 참았냐고 하면서 그 후로 혹시 뭐 별다른 것 더 먹지 않았냐고 묻는데 전 그 앞에서 지난 밤 제가 겪었던 일을 차마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꿀꺽 삼켰읍니다.
진찰을 받고 나오는데 남편이 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래 묻길래 장염이라고 했더니(그 전날의 일이 찜찜했던지 남편도 결근을 하고 병원에 함께 갔습니다)
그 다음 말이 미안해!가 아니라 의사한데 혹시 자기의 처방 얘기도 했냐고 먼저 묻는 겁니다. 정말 기가 차서.....
기가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숱한 역경을 딛고 살아 있는 제가 너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냐구요?
다행스럽게도 덕분에 전 돌팔이의 마루타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이젠 조금만 아파도 병원부터 가는 아주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물론 남편도 병원문(?) 닫았으며 그날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저녁마다 부탁하고 있죠
(어제 저녁까지는 지켰읍니다).
여러분! 전 정말 평범속에 진리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읍니다.
약은 약사에게 처방은 의사에게...
기억해줘-코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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