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항상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리없는 평탄한 길로만 걸어왔었기에 힘든 일 어려운일은 라디오에서 사연을 쓰는 그러한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해왔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번 더위가 한찬시작되려던 6월경이었습니다...
저는 올해 2000년 2월28일 대구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포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때도 학교랑 집이 가까와서 걸어다닐만큼 집과 가까이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포항이라는 곳에 친척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생활하려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렇게 생활한지 4개월여 정도되었을무렵 수요일....
그때가 점심을 먹고나서 2시경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핸드폰으로 고3인 막내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나, 엄마가 많이 아파서 어제 영남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셨어...."
순간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주말에 제가 갔을 때 엄마는 몸살기가 있다며 거의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그 전 주도 엄마는 많이 아팠던거 같았습니다...
저는 순간 동생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우선 아빠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통화음이 3번 정도 울린 후에 아빠가 받았습니다...
사실이 아니 길 바라며 아빠의 밝은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아빠는 거의 목이 메이시며, 그냥 지금 엄마 수술받으신다고 3시간째인데, 아직도 수술을 받으신다고 그리고 걱정하지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엄마가 그렇게 많이 아픈데,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냐고 큰 소리를 냈습니다...바보같이...
아빠는 그냥 "많이 걱정할까봐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하는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부장님께 어머니가 아프시다고 말씀드리고 나오려고 하는데, 울음이 나서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했습니다...
저는 바로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대구를 향해갔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엄마가 얼마나 아플까? 심각한걸까?병명이 뭘까?에서 그동안 엄마한테 힘들다고 짜증부렸던 것등등...
모든 것들이 주마간산처럼 지나갔습니다...생각이 나는 거 모두가 잘못한 거, 미안한 거 투성이었습니다...얼마나 울었는지,오는 1시간20분정도에 벌써 눈이 퉁퉁부어 있었습니다.
동부정류장에서 내려서 택시를 잡아타고 영대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엄마는 없었습니다...간호사언니에게 물어보니, 지금 수술받고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기다리니까 침대에 누워서 엄마가 갖가지 닝겔병을 달고 아빠랑 의사몇분이랑 간호사분들이랑 왔습니다...
우선은 아빠를보자 눈물이 왈칵쏟아졌습니다...그리고 엄마~
3일전에 집에서는 그래도 핏기는 있었는데. 얼굴에 혈색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말한마디 조차 하기도 힘에 부쳐 보였습니다...
그 동안 10년은 더 늙어진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병명은 "뇌지주막하출혈"일종의 뇌졸증 이었습니다...
다행이 아주 얇은 실핏줄이 터진 거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혈압이 불안정하고 옆에 있는 핏줄이 언제 또 터질 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고, 병원에 10분 만 늦게 왔더라면 아마....
대강의 상황을 듣고 엄마에게로가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엄마는 계속 손짓으로 울지말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며칠 전 부터 엄마가 계속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계속누워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약국에 가니, 급체라고 소화제를 주셨다고 그런데도 낳아지질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심한 몸살이라고 또 약을 지어주셨는데, 그것도 효과가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중 어제 저녁부터는 거의 엄마가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그래서 헛소리를 하실정도로 헤매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대구의료원으로 응급차로 가니까 사진을 찍어보시고는 여기서는 안되니까 그리고 20분정도면 다터지고 엄마가 잘 못될 수 도있으니까 빨리 영대병원으로 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영대병원에 새벽2시경에 도착해서 응급처치를 하고 나니까 지금이라는 겁니다...
평소 엄마는 몸이 약하셨고 기관지천식증상이 있으셔서 항상 기침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게 아마 아빠는 원인이지 않나하셨고, 그리고 저를 포항으로 떨어져 보내시고 많이 걱정하시고 막내동생이 고3이라서 피로가 겹치고 여러가지 스트레스와 신경예민이 겹쳐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한없이 끝없이 눈물이 흘렸습니다...
그 날 밤 엄마는 응급실에서 거의 생사를 헤매셨습니다...엄마 옆에서 잠시 잠든 엄마를 보면서 엄마라는 이름의 당신이 그렇게 안돼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3일 정도후에 엄마는 중환자실에 올라가셨고 거기서 15일 후에 퇴원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셔서 집에서 보통의 가사일 정도는 하십니다.
그래도 아빠는 다행이라고 의약분업전이라서 후에 그런일이있었다면 파업도중이었다면, 아마도 큰일 치를 뻔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또 이렇게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일이 어쩌면 그동안의 가족의 정을 일깨워 주기위한 계기가 되었다고 그래서 우리 가족이 더 따뜻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쯤 엄마는 얼마전 수능시험을 치른 동생과 오후간식을 하고계실테지요...
멀리서 나마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며, 엄마라는 이름의 당신을 불러봅니다...그리고 엄마가 나중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감할 수있도록 전 항상 당신곁에 있을 것입니다.
김종서의 이오네스코의 연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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