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꽃다발을 받다.~~
이현진
2001.02.14
조회 23
저는 결혼 4년차의 주부입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저를 가졌을 때 당연히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낳고보니 고추가 없더랍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고추없는 남자애처럼 여성스러움이 다분히 부족한 섬머스매였지요. 아는분의 소개로 애기아빠를 만났는데, 편히상 이씨아저씨로 하지요. 98년 4월30일날 만나서 영화의 7월4일처럼 우리는 그날 결혼식을 올렸지요. 쪼끔 빨랐지요. 사실 가을에 하려고 했는데 우리 가족들이 생각해보니 가을에 한다해서 없던 집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몫돈 만지는 적금이 만기되는 것도 아니고해서 혼자 자취하는 이씨아저씨를 위해 여름이긴 하지만 당겨서 했지요. 근데 아버지께서는 무슨 염천에 결혼을 하냐면서 그렇게 좋냐고 묻더군요. "네"했더니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참고로 제 동생은 다음해 1월19일 아버지께서 무슨 엄동설한에 결혼을 하냐면서 트집을 잡으셨지만 역시 행사는 치루어졌지요.
아, 그러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서 꽃다발과 관련된 첫 번째 사건 -
약두달간의 연애시절이었지만 남들 다 받는 프로프즈라는 것도 받았지요. 그날따라 보리밥집에서 박찬호경기를 반찬삼아 열심히 먹더니 불현 듯 바다를 보러가자고 하대요. 그러면서 이왕 바다를 볼바에야 마산의 가포보다는 해운대를 가는 것이 어떻겠냐길래 좋다고 했지요. 부산문앞까지는 곧장 잘 가대요. 근데 그 어두운 밤에 남의 집 동네는 왜 들어갑니까. 한마디로 해운대를 못찾아가서 얼마나 해매었던지. 그런 고생 끝에 해운대의 밤바다를 배경으로 어눌한 프로프즈를 받았지요. 보통 그때 따라오는게 술에 안주처럼 꽃다발이 따라오는게 정석아닙니까. 하지만 저역시 성격이 남성적이라 그런게 하나도 흠이 되지 않았지요. 근데 남자한테 꽃다발을 받았긴 받았습니다. 결혼을 축하한다며 평소 저를 짝사랑하던 남자에게서요. 이씨아저씨는 고맙다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전해랍니다.
이씨 아저씨의 자취방 밑집에 장미덩쿨이 있었는데 같이 나오다가 "아 예쁘네" 했더니 한송이를 꺽어준적이 있었지요.그때 그 꽃을 받지 않는건데 두고두고 후회막급이었습니다. 남의집 꽃하나 몰래 꺽어준걸가지고 꽃다발말만나오면 자기는 직접 꺽어서 줬노라고 어찌나 폼을 재든지 .
두 번째 사건 - 결혼해서 두달만에 임신을 했지요. 근데 이씨아저씨는 꽃다발의 쌍기역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거 아닙니까. 마치 학교다닐 때 ''결혼해서 아내가 임신을 하면 꽃다발을 선사함이 바람직하다''는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뭘!하는식이었죠. 대신 형부한테 받았습니다.
세 번째 사건 - 결혼 1주년때 그날은 일요일. 아침부터 이씨아저씨는 외출을 해서 낮12시경에 들어오기로 했지요. 근데 12시 반이되어도 안들어오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아~꽃다발 산다고 그러는 구나.
근데 돌아온 이씨아저씨는 나갈 때 모습 그대로였지요. 저는 내색을 하지않았습니다. 그래도 외식을 했지요. 돌아오는 차안에서 "꽃다발을 사려고 처남하고 30분을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꽃집이 없더라. 그래서 케익과 같이 준비하려고 했는데 꽃도 없어서 말았다" 는 겁니다. 참네. 주택가밀집지역에 무슨 꽃집이 있을것이며 자가용으로 5분거리가 시내인데 쪼르르 다녀오면 좀 좋습니까. 그리고 케익요? 우리집 앞이 빵집입니다.
네 번째 사건 - 결혼 1주년 5일후 저는 손발이 징그럽게 이씨아저씨를 닮은 금지옥엽 딸을 순산했습니다. 거의 우리 딸은 이씨아저씨 샘플이라고 할만큼 붕어빵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그렇게 뿌듯한가보데요.
근데 제가 다니는 병원입구에 바로 길옆에 ''나좀 사가세요.'' 하는 꽃다발들이 즐비하다는거 아닙니까. 다발을 만들어달라고 기다릴필요도 없이 거의 커피자판기처럼 돈주면 바로 건네받을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갖춘 산부인과전용 꽃가게말입니다. 언니가 후에 하는 얘기가 "이서방이 꼭 꽃다발 사줘야 합니까."해서 "영아가 원하는거 같은데 병원앞에도 있고 조금 더 가면 꽃가게가 있으니까 맘에 드는데 보고 사주세요" 했다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아저씨는 안 사왔습니다. 아깝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대신 동생부부에게서 받았습니다. 원래 꽃다발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저에게 관심을 확 불러일으키게 하더군요. 점점.
아 그리고 출산선물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 바로 휴대폰을 선물하던군요. 아니 방금 아기를 낳은 사람이 돈을 벌러가겠습니까. 친구집에 놀러를 가겠습니까. 방구석외엔 거실에도 이동이 거의 없을 저에게 웬 휴대폰이 가당키나 합니까. 알고 보니 이씨아저씨의 무전기같은 휴대폰을 바꾸면서 덤으로 주는 그런 휴대폰이었죠. 결국 그 물건은 군을 앞둔 남동생이 신나게 쓰다가 들어가면서 큰언니에게 양도되어 지금꺼정 잘 지니고 다닙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결혼 2주년 그 날 저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퇴근하며 무얼 뿌시럭 거리면 들고 온 것이 바로 말로만 듣고 남들만 받는 것같은 꽃다발이라는 것이었죠. 이씨 아저씨도 생각이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었던거죠. 2주년 때마저 바치지 않는다면 뭔가 큰 지각변동이 있을 것임을 알아챘던 겁니다.
다섯 번째 사건 - 제 친구가 저의 소개로 결혼을 해서 곧바로 임신이 되었지요. 이씨 아저씨에게 그 소식을 알렸더니 바로 하는 말이 "꽃다발 보내주자"는 겁니다. 그 친구는 경기도 안양으로 시집을 갔는데 그곳까지 꽃배달을 시키자는 겁니다.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행동입니까. 제가 따져 물었더니 "남들에게는 그렇게 해줘야지" 하며 아주 성인군자 같은 말을 하대요.
이번엔 제가 돈이 아까워 안 보냈습니다.
아직도 2주년때 받은 꽃다발은 드라이플라워해서 욕실에 장식되어 있지요.
저도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꽃에 돈을 쓰는데 별로 내켜하진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때론 받아야 맛이 나는 그런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전국의 이씨,김씨,최씨기타등등 아저씨!
자주는 말고 아주 가끔 받아서 맛이 나는 그런 낭만적인 순간을 아내에게 선물해보세요.
요즘엔 한 두 송이라도 너무나 멋지게 포장해주는 곳이 많답니다.
끝으로 우리 이씨아저씨 그렇게 구두쇠 아닙니다. 못 먹는데 돈 쓰는 게 아까워서 그랬던 거지요. 그것말곤 거의 백 점짜리 남편이랍니다.
"자기야 그래도 이씨아저씨라고 했으니까 아무도 이름은 진식 이란건 모를꺼야 사랑해요!"
ALWAYS and Forever (너만을)-현진영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