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 살뻔한 딸래미
윤혜경
2001.02.13
조회 14
저는 결혼 2년차가 조금 덜된(?) 주부입니다. 얼마전 저희 가족이 겪었던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99년 7월 무더운 여름에 결혼하여 지금은 태어난지 2개월된 딸내미와 세식구가 살고
있지요.
딸.내.미
오늘 제가 두분께 드릴 말씀이 바로 이 딸내미와 관련된 얘기입니다.
뽀얀 피부를 가진 저희 딸내미는 지금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데요.
애기라는 호칭도 있고, 경민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이렇게 ''딸내미''를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까딱 잘못했으면 남자로 살아갈뻔한 어이없는 사건이 있어서지요.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이 얘기를 하려면 우선 저희 신랑 얘기를 안할수가 없네요.
저희 신랑은요 경상도 사나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연애할때 눈에 띄는 박력은 없었지만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더군요.
그로인해 동갑 동호회에서 만난 우리는 99년 봄에 만나 그해 여름에 결혼하는 초스피드 커플이 되었지요.
연애할때 무뚝뚝했던 신랑은 결혼하자 통상적인 경상도 남자같지 않게 자상하고, 집안일도 잘 거드러주더라구요.
그치만 웬 아들타령을 그렇게 하는지....
근데 결혼전에는 결혼만하면 애가 생기는줄 알았는데 애가 그렇게 쉽게 들어서지는 않더군요.
제 나이가 서른을 넘긴데다가 직장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애가 안생기는게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마침내는 결혼 7개월만에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하였는데 거짓말처럼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임신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잠잠하던 신랑의 아들 타령은 다시 시작되었어요.
너무 창피한 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우리 애는 아들이 분명하다고 큰 소리를 뻥뻥치고 다니는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예요.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는데두 "선생님 아들이지요?"라고 하구요.
의사선생님은 "글쎄요,..."라는 애매한 말로 넘어가곤 했지만요.
이런 신랑의 자신만만한 행동으로 시댁 식구들은 뭔가 확신할만한 구석이 있나보구나
하시며 당연 아들이겠거니 생각하셨지요.
드디어 출산하는 날 !
사정상 수술을 하게된 저는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회복실에서 간호사에게 건강한 아기인지를 물었고, 건강하다는 대답을 들은후에 아들인지, 딸인지 물었지요.
딸이라는 대답을 들은후 다시 잠에 빠진 저는 정신이 돌아오면서부터 신랑이 섭섭해하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퇴원하고 집에 와서도 신랑은 한동안 애기 기저귀를 갈때면 애기한테 고추 어디다 두고 왔냐며 서운함을 대놓고 표현했고, 저는 그런 신랑이 야속했지요.
애기가 태어나면 한달안에 출생신고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는데 이름때문에 고민하느라 출생신고를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태어난지 29일만에 신고를 했습니다.
출근했던 신랑이 김경민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후 기념으로 등본을 떼어 잠시 집에 들렀더군요.
근데 신랑이 보여준 등본의 001204로 시작된 애기의 주민번호는 뒷자리가 ''3 ''으로 시작되어 있더군요.
''3''이라는 숫자가 생소하여 "어 뒷자리가 3이네" 그랬더니 신랑이 1900년대 출생자들은 남자가 ''1'', 여자가 ''2''이지만 2000년 출생자들부터는 틀려졌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순간 신랑의 표정이 이상스레 변하더니 "내가 여자로 신고한거 맞나 ?" 하는거예요.
그러더니 바삐 동사무소 전화번호를 찾아 전활 걸었고, 확인 결과 남자로 출생신고가 돼 있다는걸 알았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신랑은 그 순간 머리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대네요.
''그동안 ''1''이 남자, ''2''가 여자였으니 2000년도에도 당연히 ''3''이 남자, ''4''가 여자일텐데 경민이는 왜 ''3''이지? 혹시 2000년부터는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3''이 여자, ''4''가 남자인가'' 했다는군요.
하여튼 신랑은 동사무소 직원이 지금 빨리 와서 서명하면 정정된다는 얘길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여자로 정정을 하였지요.
만약 등본을 자세히 보지 않았거나, 보았드래도 그러려니 했으면 어쩔뻔 했어요? 영락없이 남자로 살뻔한 사건이었지요. 아마 20년쯤 후에 그때도 군복무가 의무 라면 아마도 우리딸을 군대에 보낼뻔 했지 뭐예요 .
중요한건 확인 결과 신랑이 출생신고서에 무의식적으로 성별을 남자로 기재를 했다는데 있지요.
저는 혹시 동사무소 직원이 애 이름이 다소 남성적인 이름인 경민이어서 남자로 기재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바로 애기 아빠가 남자로 적은겁니다. 참말로 ^-^
세상에 얼마나 아들이 좋았으면 출생신고서에다가 남자로 썼을까요.
나중에 경민이가 알면 혹시 섭섭해 하지나 않을까요?
그치만 볼살이 통통하게 오르면서 날로 이뻐져가는 경민이를 지금은 질투날 정도로 신랑이 예뻐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너무나 어이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 일은 우리 가족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답니다.
아마 앞으로도 떠올릴때면 계속 즐거움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싶네요.
태사자-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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