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말씀드릴 사연은 사진찍는걸 무척 좋아하시는 저희 아버님 얘기랍니다.
지난 11월초에 아버님은 계모임에서 등산을 가시게 되었죠..
놀러가면 사진기가 있어야 되는데, 얼마정도면 살수있냐고 물어보시길래 신랑이 홈쇼핑책자를 통해 알아보더니, 20만원 정도면 사겠다고 했지요..
형편이 되지않아 저희부부가 장만못해드리자, 아버님은 연금나온돈과 짜투리돈을 모아 카메라를 구입하시기로 하셨죠.
카메라를 그렇게 구입하시기로 하신 아버님은 홈쇼핑에서 배달이 오기전까지 신랑과 저를 볼때마다
"언제, 카메라오노, 언제오노, 오늘안왔나, 왜 안오노"
그러시며 대단한 기대를 하셨고, 일주일 후쯤 카메라가 배달이 되자 매일매일 그 카메라를 쳐다보시고는
"이건 뭐하는 거고? 이거는 뭐꼬?"
이러시며 신랑과 저를 볼때마다 궁금해서 물어보시고 그러셨답니다.
그렇게해서 간단한 기능을 익히신후 그 카메라를 들고 계모임에서 가는 등산을 다녀오셨어요. 등산 다녀오신뒤 며칠이 지나 사진현상했는걸 보시고 계시길래
저도 옆에서 봤는데, 아버님은 다른사람 사진 찍어주느라 아버님 당신 사진은 달랑 2장밖에 없었답니다.
그런일이 있은후 12월초 할머니 제사날이었죠..
어머님과 저는 오전부터 제사음식을 장만하게 되었어요. 어머님은 콩나물을 다듬어시고, 저는 옆에서 전을 부치고 있었죠.. 멀찌감치에서 지켜보시던 아버님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그 모습을 찍어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오셨어요. 그리고는 어머니와 저의 모습을 찍으셨죠.
어머님은
"뭐! 이런걸 다찍노, 할일도 어지간히 없다. 쓸데없는거나 찍고 그카지말고 방앗간가서 떡이나 찾아오이소" 라며 화를 내셨고,
아버님은 "그냥 한장찍었다. 한장! 떡 찾아오께"
그러시며 자전거를 끌고 방앗간으로 가셨지요.
그리고, 설이 다가오기 며칠전 아버님께서 그때의 사진을 현상해 주셨는데, 너무나 꾸미지 않은 자세의, 자연스럽게 일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마치 작품사진을 보는것 같아 아버님께
"아버님!! 사진 잘 나왔네요. 너무 잘 나왔어요.. 다음에 또 찍어주세요"
그러니까, 아버님께선
"오냐, 다음에 또 마이 찍어주께"
그러시며 뿌듯해 하셨어요..
시간이 지나, 설 하루전 어머님과 같이 저는 차례음식준비를 하느라 전을 부치고
있었죠. 아버님께서 이번에도 카메라를 들고 오셨어요.. 찍으려니까 어머님께서
"어이구!! 정신이상한 사람처럼 와 그카는교? 사진기나 들고 다니고,, 이런거 자꾸 와 찍노.. 요새사람 사진 못 찍오본 사람있을까봐서 쓸데없이 찍는교"
라며 화를 내시니까 아버님께선,
"아이고! 참, 그카마, 사진찍는 사람은 다 정신이상자가? 사진찍는기 뭐시 어떻노"
라며 말씀하셨고, 괜히, 내가 ''다음에 또 찍어주세요'' 라는 말을 해서 이렇게 된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어
"아버님!! 내일 한복입었을때 찍어주세요"
그러니까 아버님은
"괜찮다, 여기 봐라 ,, 여봐라"
그러시며 저의 모습을 얼른 한장 찍어주시고는 자리를 비우셨지요..
전 사진찍는걸 좋아하니까 그 와중에도 얼른 이쁜 표정을 지어보였구요,,
그리고, 그다음 설날 아침에 또 이 사진기가 말썽이었습니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자마자 아버님은 또 사진기를 갖고 오셨지요. 그러고는 어머님께서 부엌에 잠시 나가셨을때 사진을 찍어주셨죠.. 물론 예쁜 한복을 차려입은 저는 이때다 싶어 얼른 신랑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했구요...
근데, 부엌에서 들어오시던 어머님은 카메라를 들고 계신 아버님을 보시자,
"너그 아부지 와 저카노!! 사진은 시도때도 없이 찍는다. 설날에 차례상 앞에 놔두고 누가 사진 찍는다 카더노.. 사진은 놀러가서나 찍는기지.."
그러시자, 아버님께선
"차례 다 지내고 찍는긴데, 뭐 어떻노, 내가 하는일에 무조건 트집이다. 너그 엄마는...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다.!!"
그러시며 두분이 다투셨는데, 괜히 또 어제 내가 ''한복입었을때 찍어주세요''란 말을 해서 이렇게 된것 같기도 해 죄송한 마음이 들어 재빨리
"아버님, 어머님 세배 받으셔야죠. 두분 함께 자리에 앉으세요"
그러니까, 막 다투시던 아버님은 어머님과 나란히 앉기 싫어셔서 옆에 뚝 떨어진곳에 옆으로 등을 비스듬히 돌려앉으셔서는
"따로 절해라, 따로, 나는 너그 엄마랑 같이 절 안받을란다."
그러시니까 어머님은
"뭘 따로 절하노.. 그냥 이래 앉아서 같이 절 받으면 되지. 그냥 같이 절해라"
그래서 제가
"아버님, 좀더 어머님 가까이 앉으세요. "
그러니까, 아버님은
"됐다. 그냥 이래가 같이 절해라.. 이래 받으면 되지"
그렇게해서, 결국 절을 올렸죠. 두분이 다투시니까 세뱃돈도 따로 주시더군요.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솔직히 그건 좋대요..
이렇게 카메라 때문에 자주 다투시는 아버님, 어머님을 보니 빨리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항상 남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시는 아버님과 함께 공원에 가서 이번에는 제가 아버님사진을 많이 찍어드리고 싶네요..
최성수의목련꽃 필때면
사진찍는걸 무척 좋아하시는 아버님 얘기
김지영
200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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