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의 커플반지
이정은
2001.02.14
조회 33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삼선교에 사는 딸기엄마 이정은 이라고 합니다. 왜 딸기엄마냐구요?
딸아이 하나, 기지배 하나 그렇게 딸만 둘인 딸기엄마입니다.
오늘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우리 큰아이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제는 딸아이가 사무실로 전화를 했더군요. 커플반지를 받았다는 거예요.
너무 놀랍고, 웃기기도 해서 누군한테 받았냐 했더니, 모르는 아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퇴근하는 길에 시장 어느 집에서 파는 하트모양의 초코렛을 사오라는 것이 아니겠어요.
반지 준 아이한테 줄거냐 물어보니 "아니 내가 좋아하는 애는 다른 애야. 그 애 줄거야."
하면서 꼭 그 집에서 사와야 하고, 포장은 어떻게 하면 좋냐고, 집에 일찍 오면 안돼냐고 야
단입니다. 아무리 어리지만 조금 섭섭하기도 해서 할아버지와 아빠는 초코렛 안주냐고 했
더니, 줄거랍니다. 그것도 저보고 사오라고 하더군요. 얌전해 보이기만 하던 큰아이가 커
플반지라니... 기분이 이상하데요.
저녁에 빵만들기 모임에서 그 날 따라 발렌타인데이라고 생크림케이크를 만들어서 한 손에
는 케이크를 들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시장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특별히 가게 앞에다가 초코렛만을 따로 내 놓고 팔고있었는데, 하트모양 초코렛, 땅콩모양
초코렛, 넥타이, 와이셔츠 모양의 초코렛에 크기도 여러 가지, 색깔도 참 다양하더라구요.
빨간 하트 초코렛에 이것저것 여러 모양의 초코렛과 사탕을 담고 나니 괜히 웃음이 나더군
요. 처녀시절 애기 아빠하고 연애할 적에도 이렇게 많은 초코렛은 사지도 않았는데...
초코렛을 담을 조그만 종이 상자를 마지막으로 또 한 짐을 만들어 집에 오니 아이는 낮에
받은 듯한 분홍색 커플반지를 끼고 잠을 자고 있더군요.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새벽같이 눈을 뜬 큰아이는 초코렛을 사왔느냐, 어디다
두었느냐, 자는 저를 흔들어 물어보고 가방이며 옷이며 여기저기 뒤적이더군요. 도저히 더
는 잠을 잘 수가 없겠기에 같이 일어나서 초코렛 포장하는 것을 도와주었지요.
포장을 하면서 그 애는 어떻게 널 알았냐고 다른 특별활동 시간에 보는 아이냐 했더니, 아
리라나요. 복도에서 그냥 본 아이라는 거예요. 또, 그애한테는 초코렛을 안주냐고 했더니,
"그 애는 여드름이 많이 나서...어떻하지?" 이러고는 초코렛을 친구것, 아빠것, 할아버지것,
세 개로 잘 나누어 담더니 푸른빛이 도는 것을 친구를 주겠다고 하더군요. 평소 분홍색을
좋아하는 큰애가 의외다 싶어 그게 제일 예쁘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애가 좋아하는 색이 파
랑이라나요. 이래서 딸자식은 키우나 마나 인가봅니다.
한 손에 자랑스럽게 초코렛 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가는 큰애를 보면서 요즘 애들은 당당
해서 좋구나 싶기도 하고, 왜 이런 날이 있는지 보다는 선물에, 그것도 꼭 초코렛에 의미를
두는 이 날을 ,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에는 너무한 호화판 초코렛 바구니 얘기를 몇
년후 우리 딸아이의 얘기 되지 않도록 이날의 의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야
겠다 마음먹으며 그래도 참을 수 없어서 혼자서 빙긋이 웃어봅니다.
동화속으로-더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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