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결혼한지 막 한달하고 3일째되는 완전 초보 가정주부입니다. 이번 설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 볼려구 합니다.
저는 요즘 아가씨들이 그렇듯 요리라든지 청소등의 집안살림에 많이 서툽니다. 또 위에 언니가 있어 더욱더 집안에서 하는 살림과는 무관한 26년을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와는 상관이 없는냥, 저는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나니 그게 아니더군요.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제손을 거쳐야 하더군요, 지금 제 현실은요 어떠냐 하면요, 요리부터 세탁까지 항상 친정집, 언니집에 전화해서 해결하거나, 요리책을 옆에 끼고 다니며 매 끼니때마다 2시간씩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결혼한 사람이 하필이면 시골의 장남입니다. 그리고 시댁의 동네엔 위로는 큰집, 그 밑으로는 친척분들의 집이 있는 동네인지라 제가 맏며느리로서 설날에 해야 할일들과 그 일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설날되기 10여일전부터 많이 걱정했답니다. 도대체 설음식은 뭐가 있는지 제사상은 어떻게 차리는지, 가서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고, 꿈에서조차 그 일들이 나를 괴롭히더군요, 그래서 머리를 약간 쓰리고 했죠, 사실 아주 얄미운 생각이지만요, 제가 결혼하기 전에 교통사고에 의해 발목 인대가 늘어나서 지금도 한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걸 이용하기로 했죠. 설연휴전날인 22일 오후에 다니는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후 한의사 선생님께 깁스를 발목에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과는 안면도 있고하니 철판 딱 깔고 설날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걱정되니 해주면 안되냐고 양해를 구했죠. 한의사 선생님은 어이가 없는건지, 아니면 한의원에서는 깁스가 안되어서 그런지, 안된다고 그러되요. 그래서 제가 붕대라도 단단하게 감아달라고 한번 더 부탁하니 그것도 안된다하더라고요. 너무 서운하고 앞이 막막하더라고요. 처량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니 선생님이 발목에 이상한 테이프 같은 걸 감아주더군요. ''이거라도'' 하는 심정으로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한의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걸로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쎄 양말을 신고 보니 표시가 전혀 안나더라고요. 앞이 캄캄하대요. 난감하더군요. ''내일 시골에 내려가야하는데....'' 그래서 한가지 더 머리를 썼죠. 붕대를 사서 내가 직접 감기로 말이죠. 신랑한테 솔직히 얘기했습니다. 아니 애원하고 달래고 윽박질렀습니다. 일하는게 무서워서 그러니 붕대사건에 협조해달라고요. 신랑 한마디도 없이 ''O.K''하더군요. 이제 붕대만 사서 감으면 가서 편히 쉬다 오겠지.. 콧노래가 흥얼흥얼 절로 나오고, 속으로는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동네약국이 문을 닫았지 뭡니까, 그럼 ''뭐 내일 아침에 내려갈때 약국에 들르야지...'' 생각했죠. 그런 생각으로 집에서 편안히 밥먹고 텔레비젼 보고 놀고 있는데 "따르릉"하고 전화가 오더군요. 시댁에서 지금 당장 내려오라고요.. 급히 한복이며 옷가지며 챙겨서 출발한게 밤 10시쯤, 그래도 붕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더라구요. 붕대를 사야지 하는 마음에 가는 길에 약국이란 약국을 다 들렀습니다. 근데 이게 웬걸, 약국이란 약국이란 모두 문을 닫았지 뭡니까! 편의점에서도 붕대는 안판다더군요. 정말 난감 또 남감하대요. 2시간이면 충분히 가는 길을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시댁에 도착했습니다. 차가 막혔냐고요. 아니요. 붕대찾아 다닌다고요. 결국은 못 샀습니다. 게다가 시댁의 동네엔 약국은 고사하고 슈퍼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제 계획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죠. 나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인지 시댁에 도착해서는 내일이 설날인데 늦게 왔다며 꾸지람을 장장 1시간이나 들었습니다. 어디 그것뿐이었나요. 23일 새벽부터 24일 시댁을 나오기까지 제손에는 물마를 시간이 없었고, 허리한번 펼수가 없었답니다. 나중에는 서러워서 눈물까지 나더군요. 여태까지 안해본일들을 한번에 하려니까 몸은 힘들고 스트레스받구... 같은 나이의 아가씬 저를 약이나 올리듯이 일은 하나두 안하구 텔레비젼 보구 잠만 자구... 결혼은 왜 했는지하는 생각까지 들어 신랑에게 짜증내구 신세 한탄까지했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잘쓰야 하는데 제가 너무 못된 마음을 먹어서인지 하느님이 벌을 주신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악몽의 시간들이 지나고 친정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젠 완전히 내 세상이었죠. 친정엄마를 보니 이때까지 설날에 안 도와 드린것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하다못해 설겆이라두 도와드렸으면 좋았을걸 하느 후회가 엄청 들더라구요. 하지만 여긴 친정집... 손하나 까닥 안하고 이리 뒹굴 저리뒹굴 했습니다. 친정엄마 역시 시댁에서 일 많이 했을 텐데 라며 저를 안쓰러워 하시며 예전과 마찬가지로 저에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하시더라구요. 진짜 내 세상이었죠.
저녁때, 친정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붕대사건 얘기를 했습니다. 엄마는 놀라시며 다음부터는 그런생각 꿈도 꾸지말라며 저에게 당부 또 당부했습니다. 원래 결혼하면 시댁가서 하는게 당연하다는 말씀과 함께,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들으시던 아빠가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올 추석엔 집에 먼저 들렀다가 가라하시더군요. ''왜요''하고 물으니 나무막대기 2개와 두꺼운 붕대 준비해 놓을테니 집에 들렀다 깁스하고 시댁에 가라더군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부모마음이 이런거구나 하고 괜히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설마 추석에 아빠가 제 팔에 깁스 해주시진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딸자식이 고생하는게 얼마나 가슴 아프시면 저런 말씀까지 하시나 싶더군요. 저희 엄마도 마찬가지고요. 제 성격에 가서 짜증아내고 온몸에 멍까지 들어가며 일한게 믿기지 않는다시며 대견스럽게 몇번이나 칭찬해주더군요.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참!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잊어버릴까봐 붕대 큰걸로 하나 구입했습니다. 제가 설연휴내내 붕대땜에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아시겠죠. 이 글을 쓰고나니 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댁에 가서 일안할려고 머리나 쓰고 친정집에 가서 엄마일 도와주지 않고 뒹굴거리거나 하고 말입니다. 이래저래 저는 효녀는 못되나 봅니다. 그래도 이번 설날에 느낀게 있습니다. 그건 저의 부모님의 사랑과 사람이 나쁜 쪽으로 머릴 쓰면 반드시 후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며느리님들 머리쓰지 말고 착실하게 삽시다. 그리고 부모님들께 효도합시다
홍경민의 혼자만의 느낌
초보 아줌마의 설날 보내기
박수경
200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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