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어머니께
고재석
2001.02.09
조회 23

많이도 약해지셨습니다.
이날 이태 것 한번도 당신이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건만, 오늘은 소리 없이 우시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의사가 죽을 때까지 낳지 않는 병이라 말했다는 것을 듣고 알았습니다.
어머니... 가엾은 어머니...
이제는 당신의 고생이 보상받을 때도 됐건만 왜이리 하늘은 불공평하기만 한지... 뭣하시려고 그 아까운 젊음을, 그리고 당신의 삶을 우리에게 받치셨습니까.
통증 때문에 지금도 잠 못 이루며 이리저리 뒤척거리시는데, 우리 자식이란 것들은 여전히 다리 쭉 뻗고 자고 있습니다. 월요일에 병원에 입원을 해야하건만 그 잘난 자식놈은 시험공부 걱정이나 하고 있으니...
한번도 어머니 몸을 구석구석 주물러 드린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처음엔 다른 어머니는 몰라도 우리 어머니는 그런 것 싫어하는 줄 알았답니다. 그리고 비싸고 좋은 음식들, 좋은 옷들, 여행가는 것들도 말입니다. 나중에야 동네 아주머니들끼리 놀러간다거나 친목회에서 놀러간다면 열 여덟의 소녀처럼 그리도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또 맛좋은 음식점에서 그리도 잘 드시던 모습을 보고 어머니도 이런 것을 좋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들 때문에 늘 참고 계셨던 것은 모른 체...
오늘 어머니 다리를 처음으로 오래 주물러 본 것 같네요. 가슴 아픈 건, 어머니가 그 시원함 느끼지 못하고 남의 다리 만지는 것 같다고 말씀만 하시는 거였습니다. 진작 주물러 드릴 것을...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절대 불구자는 안 될 겁니다. 그런 몹쓸 병은 우리 곱고, 천사같고, 가장 고귀한 어머니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젠 행복해야지요.
이제 4일 후면 아버지 환갑인데, 어머니 이런 모습을 보면 아마 아버진 하늘에서도 미안해 하실 겁니다. 살아서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이젠 하늘에서나마 어머니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을 텐데, 조금 살만하니 몸이 말썽이니 그런 맘이 안 들겠습니까.
어머니, 저 열심히 살께요. 대학원 등록금 댄다고 아픈 몸 이끌며 골프장에 풀 뽑으러 간 것이 화근이란 것 알고 있답니다. 저 때문에... 그 잘나빠진 저 때문에...
어머니 아프시면 안되요. 아셨죠?

젝스키스-겨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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