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삼촌 생각>
글:이난수
작은 삼촌과 나는 8년의 차이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삼촌이면서 오빠처럼 어리광을 부리면서 정답게 자랐습니다.
선대에 양조장을 가업으로 했던 탓인지 종갓집 큰살림을 이끌어 왔던 탓인지 우리 집 뒤울안에는 해묵은 식초 항아리며 크고 작은 간장,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가득한 넓은 장독대가 있었습니다. 장독대 계단 양쪽으로는 월계꽃이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름답게 피었고 그 아래로는 토종국화, 과꽃, 채송화, 백일홍, 맨드라미가 피었고 그 뒤쪽으로는 꽈리나무, 까마중, 분꽃, 도라지꽃, 양귀비, 수국 등이 피어 있었습니다.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우리 집에는 다락방이 있었는데, 나는 이 다락방을 나의 비밀스런 작업실로 자주 애용하였고 간간히 낮잠도 즐겼습니다. 다락방에서 숙제를 하다가 작은 삼촌 친구들이 뒤울안에서 탁구 치는 모습을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상냥하게 인사도 하고 심부름도 곧잘 하던 내가 무엇에 틀렸는지 가끔씩 심술도 부리고 텃세(?)도 하면서 뒷문을 빨리 열어주지 않는 나에게 작은 삼촌과 삼촌 친구들은 예쁜 오색구슬과 고무줄을 사다주기도 하고 딱지도 신발주머니에 가득히 접어주기도 하고 어미젖을 막 뗀 귀여운 토끼 한 쌍을 가져오기도 하고 나무썰매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씽씽 겨울바람이 부는 날에는 고드름이 달린 초가지붕 밑에서 고드름치기도 하고 자치기도 하고 참새도 잡았습니다. 건너방에서 참새구이는 물론 꽁꽁 얼었던 인절미와 가래떡(우리 집 광에는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을 화롯불 석쇠에 구워먹기도 하고 도란도란 귀신이야기도 하고 만화책도 서로 바꾸어가며 읽었습니다.
비 오는 날은 하나밖에 없었던 박쥐우산을 초등학생인 나에게 양보하고 작은삼촌은 비닐우산을 쓰고 교복을 적시며 멀리 샘재에 있는 중ㆍ고등학교에 등교하셨습니다.
내가 사범대학시절에 방학이 되어 고향에 가면 장호원읍3리 산 5번지에서 과수원을 경영하시던 작은삼촌은 나에게 좋은 과일을 아껴 두었다가 먹여주셨습니다, 결혼 후에도 맨 처음 수확한 싱싱한 사과상자를 화물로 보내주셨던 자상하고 꼼꼼하고 인정많고 사슴처럼 순하디 순했던 나의 작은 삼촌!
그러나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작은 삼촌이 계시던 과수원을 바라보거나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리는 때에는 눈물이 나도록 그립습니다.
한 장의 추억-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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