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얽힌 추억
정은주
2001.02.08
조회 21

오늘은 수능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자연 나의 수능시험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집안이 극도로 어려웠던 그 시절, 아빠의 술주정과 엄마의 생활고는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그 와중에 언니는 적성의 문제로 대학시험을 다시 보겠다고 선언했고 난 엄마의 걱정을 자주 들어야했다.
둘 다 함께 시험을 치를 원서비조차도 우리 집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난 많은 고민을 하다 대학 시험을 포기했고, 수능시험을 치는 당일날 성당에 있는 수능시험학생들을 위한 아침미사에 참석해 그 속에서 남들 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다 떠난 성당에서 몇몇의 어머니들이 남아서 묵주기도를 계속해서 올리고 있었고 나 역시 그 속에 끼어 혼자 성경책을 읽기도 하고 엎드려 기도하는척하면서 꾸벅꾸벅 졸기도하면서 그날 하루를 보냈다. 오후5시가 지나자 시험을 치른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성당으로 왔다. 다들 큰 일을 치른 용사마냥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도 하고... 난 그속에서 친구들에게 나도 금방 시험을 치르고 온 아이처럼 행동했다.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바닷가에 가서 우리들은 열병과도 같은 고3시절에 작별인사를 고하는 조촐한 행사를 치르고 집으로 모두들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엄마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철 없는 작은 딸이 아침에 말도 없이 나가 하루종일 나타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난 엄마에게 야단아닌 야단을 들어야했고 그날 밤 나는 또 몰래 배게닛을 적시며 언니가 깰까 입을 틀어막고 울어야했다.
그 다음해, 난 시험을 치렀다. 몇몇의 친구들이 학원에서 재수준비를 할 때 집에서 재수아닌 재수를 하며 나 때문에 아빠의 구타를 받는 엄마와 보다못해 대드는 오빠와 남동생을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철없고 힘없었던 나의 19살 열병은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마구 번져가는 별을 쳐다보며 흐느끼며 날 힘들게 했다. 엄마는 빌려온 돈이라며 원서비를 줬고 난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작년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원서를 썼다. 그때는 미리 대학과 학과를 정해놓고 시험을 치르던 때였다.
그날도 수능날, 아침에 엄마는 재수하는 딸에게 잘 치라며 보온도시락을 싸주고 나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애써 엄마의 눈을 외면하고 길을 나선 새벽하늘. 아직도 별이 초롱초롱하게 나의 눈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눈이 시려 괜시리 눈물이 났다.
대부분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들사이에 끼어 시험을 치고 4교시가 되어 엄마가 사준 도시락을 여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딸걱정에 잠까지 설치시더니 보온도시락통안에는 반찬통만 덩그러니 들어있지 않은가. 엄마의 건망증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수돗가에 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셔대고는 운동장을 빙빙돌았다.
교문을 바라보니 많은 엄마들과 후배,선배들이 기도도하고 시험 끝나길 기다리며 추위속에서도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참 재미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두 손을 꼭 지르고 점심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며 종종걸음으로 노래를 불러가며 운동장을 배회했다.
시험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길에 온통 라디오에서는 시험문제분석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괜시리 마음이 착 가라앉아서 멍하니 버스종점까지 갔다 돌아오는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작년보다 더 핼쓱한 얼굴로 대문밖에 기다리고 계셨다. 점심도시락을 빼먹은 것을 후에 아시고는 도시락을 들고 교문앞에서 내내 혹시 내가 나올까봐 목을 빼고 보셨다는데, 나와 엄마는 서로 바라볼뿐 서로를 느끼지 못했나보다.
엄마는 "이 엄마 때문에 니가 고생하는구나.."하시며 눈시울을 적셨다. "괜찮아. 이상하게 배가 하나도 안고프네"하며 너스레를 떨며 엄마에게 애교를 부렸다. 엄마는 그런 날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이제 나도 그런 엄마가 되었다. 오늘은 둘째아기를 보러 산부인과에 가서 남편과 함께 초음파를 보며 뱃속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조그만 손과 다리를 신기함과 감동속에 지켜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수능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는 학생들을 보며 남편에게 수능에 관한 추억을 웃으며 들려주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아픈 상처였을것 같아. 지금의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것이 나에게 아픔으로 느껴진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는 남편의 손이 한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연로하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의 나로 있게 해준것은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었노라고, 그리고 지금은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속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노라고 말해야겠다.
자우림-하늘로 가는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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