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8개월된 아이의 엄마, 평범한 한 남자의 아내, 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시어머님의 둘째며느리입니다.
오늘은 저희 시어머님 예순한번째 생신, 회갑입니다.
매번 며느리를 감동시키시는 자랑스러운 김자 영자 철자 쓰시는 시어머님의 회갑을 축하해주세요.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난 잔치는 않한다. 난 그날 어디로 도망갈거니까 그런줄 알아라! "이렇게 말씀하셨기에 잔치는 접고, 평소 가깝게 지내시는 작은아버님들, 고모님들 그리고 외갓댁 식구들과 집에서 한끼 식사나 하자고 말씀드렸다가 어머님 마음만 상하게 해 드리고 말았습니다.
아들 마음엔 "번듯한(?)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아주버님도 남편도 실망이 큰 듯 했습니다.
어머님은 잔치도 싫다, 여행도 싫다십니다.
왜 어머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회갑도 넘기시지 못하고 병환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님이며, 깔끔한 성격에 주변 친지분들께 부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 아들이 잔치에 돈들이는 것도 싫으셨을터.
신랑 말에 의하면 어머님께선 옛날 어머니라면 누구 못지않게 고생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층층시하 시동생 시누이에 넉넉치 않은 집에 맡며느리로 시집와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해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까.
더욱 대단하신 것은 흥부네 가족처럼 한방에 삼촌 고모 모두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생활할수 있도록 많이 배려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작은아버님들 그리고 고모님들은 아버님 돌아가시고도 어머님께 지극하게 잘 하신답니다.
그동안 어머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푸셨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아버님 살아계실땐 평생 살림만 하셨던 분인데 3년전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이런 저런 구실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침 일찍부터 자정무렵까지 힘들게 일해야 2만원정도 받는다고 합니다.
두 아들들은 모두 장안에 내노라는 효자분들인지라 어머님께서 함께 살자고 협박(?)도 해보지만 싫다십니다.
막내 아들인 남편 역시 제발 집에서 쉬시라며 늘 안타까워 했지만, 아무도 우리 어머님에 왕고집은 꺽지 못했답니다.
이렇게 어머님께서 힘들게 일하시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쓰고 싶은 곳, 써야할 데, 아니 나눠주고 싶으신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집안 친척뿐만 아니라 손주들한데도 자식 며느리한데도 해주시고 싶은게 많은,
취미가 ''나눠주기'' 우리 어머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동네에서의 어머님, 집안에서의 어머님, 시어머님으로서의 어머니, 또 어머니로서의 모습은 제가 가장 닮고싶은 또 닮아야 할 거울같은 자랑스러운 분이십니다.
항상 당신이 좀더 손해보고, 또 양보하고 깊이 배려하면서도 당당한 당신을 배우고 싶답니다.
전 가끔 신랑에게 "난 엄마처럼 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번 설에도 어머님께선 며느리들에게 적지않은 세뱃돈을 챙겨주셨지요.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아버님이 주셨던 것처럼 변함없이 그렇게 아버님 자리를 대신해 주셨답니다.
또, 당신이 필요해 사신 손지갑이라며 두개를 꺼내 놓으시곤, 손지갑이 필요한것 같은 이 며느리에게 자연스레 하나를 안겨주시는 분.
며느리들 줄 요량으로 일부러 사신 것 같은데 우리 어머님은 늘 이런식이십니다.
일전엔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입으셨던 회색스웨터가 생각나 "어머님, 그 스웨터 작으시면 저 주세요"했더니 세탁을 잘못해 버리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번 갔을때 "백화점에서 만원에 샀는데 엄마한데 적다. 너 입으려면 입어라" 하시면서 내놓으시는데 회색스웨터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좀 건강하신 쳬격이고 전 좀 바른편인데...
당신이 일부러 제게 맞는걸 사셨다는걸 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만원짜리라며 제마음에 부담까지 챙겨주시는 그런 대단한 분이십니다.
우리 어머님 앞에선 입(?)조심을 해야 합니다.
어디가서 뭘 맛있게 먹었다고 하면 영낙없이 해 놓으시고.
요즘은 일전에 싸주신 조기를 맛있게 먹었다고 했더니, 가기만 하면 조기를 꾸러미로 싸 주신답니다.
일요일 하루는 쉬셔야 하는데도 그저 자식들 뭐 해줄 거 없나. 고민만 하시는 분처럼 가기만 하면 세보따리, 네보따리, 바리 바리 별별 거 다 싸 주셔서 늘 죄송하고 감사하답니다.
오늘 저녁엔 김치, 물김치, 무우말랭이, 마늘장아찌, 연근조림, 오징어 젓, 구운 김, 소고기 장조림 그리고 어머님이 싸주신 소고기로 국을 끓여 먹었답니다.
제가 한 것 이라고는 밥.
반찬은 모두 우리 어머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들이죠.
오늘도 난 이렇게 어머님의 사랑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리고 우리아이 강후가 다 자라 어른이 되어, 장가를 가고 제가 어머님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난 과연 우리 어머님을 얼마나 닮아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당신을 그리워 하겠지요.
늘 지금처럼 우리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해 주신다면 우리네 자식들은 더없이 행복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회갑,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사랑합니다. 어머님.
저희들 걱정마세요. 앞으로 잘 살꺼예요.
물보라-최진희
평범하지 않은 시어머님의 회갑을 축하해주세요
박선미
200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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