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돌아오는 결혼식날의 실수
박동수
2001.02.08
조회 25
매년 이 맘때가 되면 항상 저는 와이프한테 뜻긴답니다
올해로 결혼 4년차인데 저희의 결혼기념일이 2월 8일 이거든요
이맘때가 되면 글을 올려야지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와이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실현을 못하고 있다가 올 해 이렇게 와이프 몰래 글을 올려봅니다.
도대체 무슨 실수를 했냐구요? 지금부터 말씀해 드릴때니 성의를 가지고 읽어주세요
1995년 10월 우리 부부는 주위에서 흔히 말하는 교환방으로 만났읍니다. 잠깐 여기서 교환방이 무엇이냐구요? 교환방은 서로 다른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다가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은행간 수표의 처리를 위해 교환을 한다고들 하죠.. 바로 그 뜻이에요
만난지 1년 만에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히 혼기가 차고 혼기가 차다 보니 남들이 다 하는 그 흔한 프로포즈도 하지 못한 채, 단지 "니하고 니하고 살자"(참고로 저는 부산 토박이입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1996년 2월 8일 결혼을 하게 되었읍니다. 제가 외부인과의 왕래가 많고 은행에 근무를 하다보니 자연히 축하객들이 많을 것이고 와이프 또한 은행에 근무하면서 저 못지 않은 인맥들이 있은 지라 당연히 결혼식장은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해 주었죠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결혼식 피로연으로 이어졌죠 (부산은 결혼식 후 피로연(주로 친구들 대상))을 합니다) 좀체로 집에 가지를 않던 많은 하객들 탓에 저는 그들의 무지막지한 소주 공세에 그만 필름이 끊기고 말았읍니다. 이 끊어진 필름이 이어진 것은 바로 공항에서였읍니다. 공항까지 배웅하러온 많은 친구들이 고마워서 기쁨에 겨운 나머지 그 인파 많은 공항에서 저는 "람바다춤"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죠. 저의 와이프는 기겁을 하더군요 드디어 비행기 좌석 안. 신혼여행지는 파타야였읍니다원래 술이 많이 취한 상태에서 높은 곳을 올라가면 자연히 더 취한다는 사실을 두 분은 알고 계시겠죠. 신혼여행지까지의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 저는 취기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향했읍니다. 화장실에서의 입으로의 용변 후(?) 저는 아주 편한 자세로 화장실 옆 귀퉁이에 않아서 잠을 청했읍니다.
두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비행기 안의 고객이 전부 신혼여행객이고 모두를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을 때 저의 와이프는 결혼식 한다고 한벌 맞춘 새옷을 입고 홀로 4시간을 화장실 만을 응시한 채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아시다시피 비행기의 화장실은 앞, 뒤 2군데 밖에 없는 데 그 중의 1곳을 제가 점거 농성하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원망에 찬 시선을 홀로 받고 있을 와이프의 모습을...
저는 정말로 괴로웠읍니다. 술독으로 인하여 괴로웠고, 와이프의 꿈같은 신혼여행의 상상이 완전히 깨어진 뒤의 보복은 더더욱 괴로웠읍니다. 신혼여행지 도착 후 통상적으로 친구들이 만들어주는 부케에 있는 포도주도 못 마시고 올림머리를 할 때 사용되는 그 많은 삔도 뽑아주지 못한 채( 후에 안 애기인데 신혼여행 가서는 다 첫날밤에 한다고들 함) 그 말 많은 신혼 여행 첫날 밤을 그야말로 그냥 잤읍니다. 저는 입으로의 용변의 휴유증으로 입안의 목젓이 헐어 여행기간 내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그리고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의 비나어린 시선을 뒤로한채 와이프의 기분 맞추어주기에 급급한 신혼 여행이었읍니다.
그로부터 4년...
저희는 아들 한 놈을 낳고 단란하게 그 날의 모습을 추억으로, 또는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구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 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IMF의 휴유증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있읍니다... (참고로 저의 와이프는 명예퇴직을 하였읍니다).
DREAM-N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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