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밤에 있었던 일
임종욱
2001.02.07
조회 15
*참고로 전 전신마비장애인이며 27년째 누워 지내고 있습니다.

유비무환!
항상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나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365일 중 어느 날 그 상황이 발생하여 나를 난감하게 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향기롭지 못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늘 조심하며 주의를 기울었는데 어젯밤 그 상황이 발생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뭘 먹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에 유별난 음식을 먹은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 주일에 아래층 제수씨 일가(一家)와 결혼한 여동생과 매제가 다 모였던 날 살겹살을 구워 먹은 것밖에는 기름진 음식을 먹은 것도 없었습니다.
하얀 백색 가루!
의심되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달콤하고 감미롭고...... 맛있는...... 전지분유!
결혼한 여동생이 가져온 전지분유를 점심 대신 영양식으로 먹는 미숫가루에 두 스푼씩 타 먹은 것이 최근 삼일 동안에 내가 새롭게 먹은 음식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어젯밤 난리를 쳤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나 심증은 가는데 증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밤, 속은 편안했습니다. 전혀 난리를 칠 기색은 없었습니다.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 10시쯤 약간의 진땀이 나면서 냄새가 났습니다.
설사였습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 돌아누울 때면 엉덩이 쪽에 항상 받쳐두는 수건 한 장.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내가 깔고 자는 요는 다 젖었을 것입니다.
초저녁 잠이 많아 곤히 주무시는 어머니를 불러서 처리를 하고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서 또 한 번, 그리고 밤 사이에 또 한 번 일을 치루었습니다.
일년에 한두 번 치루는 일을 어제 치루었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어집니다.
예순 여섯의 어머니는 이제 체력적으로 나를 돌보기에 힘겨워 하십니다. 어머니를 대신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지만, 천사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잘해 드리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는 돌처럼 굳어버린 육신은 덧없이 늙어가고, 효도를 하고 싶어도 기다려 주지 않을 어머니는 이제 호호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에피소드-태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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