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아부지와 점잖은 남편의 차이..
장경희
2001.02.07
조회 23
저는 너무 자상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옛날 아버지들은 완고하시고 대부분 표현이 없으신데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자상하신 지 엄마는 주위 여자들의 부러움을 통째로 사셨죠.
자식들이 아파도 간호는 아버지 몫! 열 재고 입맛 없다고 카스테라 빵 사오시죠, 밤중에도 깨서 머리 만져주시고, 출근하셔도 수시로 전화로 확인하실 정도예요.
엄마께는 얼마나 다정하신지 요즘 탤런트 최수종씨 수준을 아마 능가 하실 거예요. 그 덕분에 엄마는 평생 닭 한 마리 안 잡아 보셨어요
아버지가 볶을 것, 백숙할 것, 다 알아 해주시고 마지막에 묻은 손에 씻는다며 도마까지 깨끗이 씻어 주신 다닌 까요.
그리고 엄마생일이면 장터거리에서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꼭 사주시고, 엄마 옷도 손수 옷감을 골라 맞춰주시고, 손님이 오면 아예 엄마는 손님하고 얘기하시고, 우리 아버지는 머리에 수건 두르시고 술상 봐오시죠... 반찬도 준비하시죠.
그래서 저는 세상에 모든 남자들이 모두 그렇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여고시절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 아버지가 점잖게 앉아 계시면서 이것 가져 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시는데 제 눈에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는 거 아닙니까? 남자가 무게 있고 점잖게 보이는데 바로 그 잘못된 안목 때문에 저의 인생 진로가 요로 코롬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저요 그 보기 좋고 점잖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 할 때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결혼 잘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말했던가요. 결혼은 현실이라고......
정말 결혼 전 그 점잖은 모습이 결혼 후 그렇게 무심하여 내 속을 시커멓게 만들 줄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냐면요 결혼기념일? 통괍니다 생일? 당연히 통괍니다제가" 아니 꽃 한 송이라도 사오지 이런게 어딨어?"하면 "꽃은 사서 뭐해 금방 시들걸..." 이 한마디면 끝입니다.그리고 남들은 아내가 임신을 하면 먹고 싶은 게 뭐냐며 온갖 호강을 다 한다는데 제가 사과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세상 여자들 다하는 임신인데 혼자만 애 가졌어!" 하면서 꿈쩍도 않더군요
저요 정말 남편에게 사과 하나 못 얻어먹고 내 손으로 사과 사 먹으며 울었습니다.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꺼이 꺼이... 그리고 지금껏 처가에 전화 한번 안한 거 있죠? 제가" 사위도 자식인데 자기도 안부 전화 좀 해요! 했더니 "전화로 말만하면 뭐해! 찾아 뵈야지.." 그리고 찾아뵈면 제가 이런 말을 안 해요...
그리고 회사 회식을 하면 왜 핸드폰은 꺼놓는지 연락이 없다가 새벽에 핸드폰을 켜서 한다는 얘기가 "여보! 꺽~ 우리집이 어디야?" 제가 속이 터져서 "거기가 어디야?" 하면 "아~여기... 아~대한민국.." 그리고는 전화를 확 끊는 거에요정말 싸워도 집에서 싸워야지 사람이 안 들어오면 얼마나 걱정되는데요 "어이구! 웬수 콱 얼어죽어라 " 악담을 하면서도 핸드폰을 누르죠 " 당신 어디야! 내가 지금 갈게!" "나? 아~ 대한민국~ 음냐! 음냐!" 그러다 어떻게 오는지 들어는 오는데 어느 날은 구두를 한 짝 만 신고 왔더라구요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화가 나서 "당신 구두 한 짝 어쨌어?" 했더니 자기가 구두를 한 짝만 신고 온 줄도 모르는 거 있죠? 심지어는 "어떤 놈이 내 구두 훔쳐갔냐 어씨!(거의 이주일) 누가 구두 한 짝만 가져갔겠어요 하도 취해서 미쳐 한 짝을 신을 정신이 없었다는 게 옳을 겁니다. 정말 만신창이 된 남편 양말 한 짝을 보니 웃음은 나오고 속으로는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더라 구요.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리하여 무심하고 술 마시면 엉망인 남편 길들일려고 제가 일을 꾸몄다는 거 아닙니까!
친구가 그러는데 남편이 쇼크를 한번 먹으면 아내 귀한 줄 안다고 그러더라 구요 ''바로 그거야!'' 제가 첫애를 낳고 둘째 애를 임신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또한 첫애 때 처럼 남편이 무심 하더라구요
저는 다 죽어 가는 소리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 에요 아~ 나요~" 남편은 "뭔 일이여!.." 내가 그렇게 죽는소리를 내도 아주 목소리가 태연하더군요
저는 더 한층 강도를 높여" 나아~ 아~ 나 여기 병원 으~ 나 ..수술 받으러 ...왔어요" 수술이라는 말에 남편은 약간 동요한 듯 "당신이 뭔 수술이여?" 저는 "갑자기 배가 아파아... 애가 유산됐데.. 지금...수술 들어간데.!" 우리 남편 뭐라는 줄 아세요? 당장 뛰어 온다고 해야 당연 할텐데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온다고 해도 말리겠지만 한다는 소리가 "어이구 애 하나 제대로 못나냐... 지금 바쁘니까... 슬슬 하고 와" "으...슬슬?" 저는 이를 갈았습니다
아내가 수술을 한다는데 슬슬 하고 오라니... 사실이라면 정말 피 눈물 나겠더라 구요 수술이 무슨 산책입니까 ? 정말 이 무심한 사람과 살아야 될지 말아야 될지 결정을 해야 될 시기가 온 것 만 같더군요
정말 자상한 우리 아버지 생각이 절실하고 울고싶데요. 아무튼 저는 퇴근 시간에 맞춰 드러누워 있었어요.
남편은 저를 보더니" 꼴 좋다... 저런 불량품을 모르고..."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저는 아픈 척 신음 소리만 냈습니다. 한번도 설거지는 물론 청소 한번 안한 사람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남편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더니 드디어 부엌으로 나가더군요. 그리고는 부시럭! 바시럭! 소리를 내고 무언가 끓이는 거예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가 떨어진다고 아는 사람이 드디어 뭔가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장롱쪽으로 얼굴을 대고 소리내지 않고 웃느라고 입이 다 뻑뻑했습니다. ''역시 남자를 변화시키는 건 바가지가 아니라 머리야! 머리!''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죠!
우리 엄마를 비롯하여 자상한 남편과 사는 사람들은 그때 제 기분 모르실 거 에요. 아무튼 저는 처음으로 남편이 만든 음식을 기대하며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부엌에서 후루룩 짭!짭!! 소리가 들리데요? 아니 수술은 무슨?... 식때가 넘어 배가 고파 죽겠는데 저 사람이 뭐하나 싶어
"당신 뭐해요?" 남편은 "왜! 수술했다며 뭘 먹을려고..." 자존심은 상했지만 "그래도 입은 썽썽한데 먹어야지 미역국 같은 거..." 남편은 또 "애를 낳아야 먹는 미역국을 감히 먹겠다고? 허허?" 하며 속을 긁데요 그런데요 그런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 왔다는 거 아닙니까? 세상에 그런 미역국은 처음 먹어 봤습니다. 여러 분은 고춧가루 들어있는 미역국을 먹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남편이 끓여온 미역국을 보고 저는 기가 막혀 말문이 다 막히더군요.
라면은 끓여서 자기가 먹고, 라면 국물에 불리지도 않은 미역을 넣어 고춧가루와 후추를 추가해서 끓여 온 거 있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 먹어봐! 기가 막힌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저요? 그 미역국 한 숟갈 먹고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화내 봤자 둘째 아이를 가지고 있는데 태교에도 안 좋겠다 싶고, 그래도 내 눈에 콩 꺼풀 씌워 결혼했는데...
그래서 그 일 이후로 결론을 내렸죠.
"남편을 바꾸느니 차라리 내가 바뀌자!"
남편에 대한 기대를 비우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더군요
그리고 시어머님의 한마디에 기대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에유! 니 시아버지도 환갑 넘으니 달라지더라... 환갑... 금방이여! ..."
변춘애씨! 정말 환갑이 금방 일까요?
환갑까지 가지 않아도 이렇게 전국적으로 흉을 봤으니 방송이 되면 얼마간은 속이 다 후련할 것 같네요. 좀 심했나요?


테마-아름다운세상을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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