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에서의 행복
차경아
2001.01.03
조회 30
여덟번째를 맞이한 결혼기념일 저녁에 , 예쁜 원피스를 꺼내 입고 와인 한병과 미니케잌을 준비한 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전화벨이 울리고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미안한데, 오늘 갑자기 회식이래!"
진짜 미안해 하느듯한 남편의 말에 "할수 없지 뭐! 그치만 오늘 무슨날인지는 알지? 조금 있다가 대충 빠져 나오면 안돼?"
"알았어. 그렇게 해 볼께"
그러나 남편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이의 와이셔츠에서 붉은 빛깔의 얼룩을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술자리에서 곁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비틀거리다 묻혔다는 남편의 변명을 뒤로 하고 앉아, 아침밥은 고사하고 출근 준비도 도와주지 않은채, 배웅조차 하지 않은 나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속 좁은 자신을 책망하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차마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워 핸드폰에 문자 메세지를 띄웠습니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그날 저녁 남편은 장미꽃을 내 나이만큼 사들고 들어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사실 저보다 알뜰한 남편이었기에 여지껏 받은 장미는 서너번뿐, 그마저 10송이 내외가 고작이었습니다.
베시시 웃으며 장미를 건네주는 남편의 얼굴은 마치 10대 소년인양 수줍어 보였습니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저런 표정이 가능하구나 생각하면서, 저는 행복함을 넘치도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사소함에서 느껴지는 이런 설레임과 행복을, 서로에게 전해줄 수 있는 또 한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하며 2001년 새해를 열어가려 합니다.
써클-To My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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