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당신 병환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렵기만 한 세 딸들을 위해 조금씩의 돈이 모일 때마다 그런 딸들의 혼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요량으로 그릇을 사 모아 두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릇은 큰언니는 결혼할 때쯤에는 이미 유행에도 뒤떨어진 헌 그릇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그 그릇에 담긴 엄마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시집가면서 그것을 소중히 가져갔습니다. 그중 어떤 것은 한번도 쓰이지 못하고 장식장에 놓여져 있는 것도 있지만 요.
엄마는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던 큰언니의 결혼식을 얼마 앞두지 않고 당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남은 시간을 그렇게 또 병원 중환자 실로 입원하시고 말았습니다.
늘 그래왔던 일년 중 거의 반 이상을 그곳에서 보내오신지가 벌써 7년 가까이 된 엄마나, 그리고 세 딸들도 이번에도 전처럼 또 그러시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의사선생님께서는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를 하십시요"라는 말을 버릇처럼 세 딸들에게 하셨습니다.
언니 결혼식에 엄마는 끝내 참석하지 못하시고 언니의 결혼은 눈물의 결혼식이 되고 말았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큰딸과 사위를 그래도 올바른 정신으로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큰언니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언니의 결혼식 사진을 내내 기다리셨습니다. 큰딸의 하얀 드레스 입을 모습을 가슴에 새겨두고 가시려는지 그 사진을 많이 보고 싶어했지만 세상 일이란 게 왜 그리 잘 맞지 않는지...
엄마는 그렇게 입원하시고 두달이 채 못된 어느 주일날 아침 그렇게 저희에게 아무 말씀도 없이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렇게 중환자 실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막내딸은 참 모진 딸이었습니다.
"너도 시집가서 더도 말고 꼭 너 닮은 딸 하나 낳아봐라."
철이 들면서부터 늘 아프고 병원 냄새가 몸에 배어있는 엄마라 해도 그 엄마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지만 입에서는 엄마에게 아픔이 되는 말만 골라서 하게 되는지 엄마는 그런 막내딸 때문에 여러 번 눈물을 보이셨고 한번도 그런 딸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한 적 없으신 엄마는 너무나 야속한 딸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셨습니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애기이고 마냥 철부지로만 보이는 막내딸을 이렇게 두고 가시기가 못내 마음이 아프신 지 늘 어린 막내딸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엄마의 마지막이 될 병원 입원 기간동안 엄마는 내내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엄마를 보내게 될까봐 세 딸들 모두 가슴을 졸이며 엄마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오시려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한달 여의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차츰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세 딸들을 알아보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내내 병원 근처 여관에서 묵으면서 엄마를 지켜보던 저희는 아무래도 오래 걸릴 것 같아 소지품을 더 가져오려고 집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러 엄마에게 갔었습니다.
독한 약에 취하신 엄마는 물끄러미 딸을 바라보시며 " 나 집에 가고 싶은데... 나 좀 데리고 가라." "안돼! 엄마, 낼 아침에 일찍 올게, 다 나아서 가야지... " 하며 병원을 나섰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막 준비해서 병원으로 가려는데 전화벨일 울렸습니다.
"여기 병원인데요. 지금 막 돌아가셨는데 빨리 오실 수 있으세요?"
엄마는 그동안 모질게 굴던 막내딸에게 평생 한이 될 가슴의 멍울을 남기시고 그렇게 가셨습니다.
"이번에 엄마 퇴원하면 여름에 꼭 엄마하고 같이 넷이 꼭 제주도 가자. 그러고 보니 엄마하고 어디 여행 한번 간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엄마 병상 머리에 앉아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엄마를 보며 큰언니가 말했습니다.
여름이 되려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몇 달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렇게 가셨습니다. 장례기간 남아있는 딸들은 혹시 엄마가 잠깐 의식이 없으실 때 우리가 그걸 모른 채 그냥 엄마를 보내드린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너무나 많이 슬펐습니다.
생전에 한번 고운 옷 한 벌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신 엄마에게 처음으로 큰언니 결혼에 입으실 한복을 맞추러 한복 집에 가서 색을 고르며 어찌나 행복해 하시던 지 그렇게 곱게 맞춰놓으신 한복 한번 만져 보시지도 못하신 엄마... 그 고운 한복을 태워드리며 한없는 죄책감과 불효로 많이 울었습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그 말을 왜 저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는지, 언제나 엄마에게 맘껏 잘해드리지 못하고 엄마로 인해 내 삶이 자꾸만 어긋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지 언제나 엄마를 생각하면 많은 후회와 죄책감으로 마음이 가득 찹니다.
그렇게 엄마를 떠나보내고 벌써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픔으로 가득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지겹기만 하던 병원과 엄마의 몸에 배어있던 약 냄새... 아픈 모습으로 늘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짜증만 냈던 막내가 그런 모습의 엄마라도 계셨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는걸 엄마가 아신다면 그런 모습을 보며 그동안 못나고 모질게 굴던 딸에게 입으셨던 마음에 상처를 깨끗이 잊고 여기서 저도 엄마 없는 고통으로 그 상처를 제가 대신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그것으로나마 그동안의 불효를 대신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엄마에게는 그런 딸들을 마지막까지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엄마 가슴에 못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큰언니의 이삿짐 속에 엄마의 그릇을 보면서 또 한번 저의 못났던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난 후 가슴속으로는 수 없이 불러봤지만 한번도 입 밖으로 소리내어 ''엄마''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 것이 제게는 얼마나 큰 상처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제가 "엄~마"라고 콧소리를 섞어 말하면 언제나처럼 "왜~에" 하며 대답해 주실 것만 같은데... 아무 대답이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제 스스로 확인하기가 싫어 그렇게 불러 보고픈 ''엄마''라는 소리를 오늘도 가슴속으로만 불러봅니다. ''엄마...''
성대현의 널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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