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감사하며....§▒▒▩
이제숙
2001.01.03
조회 28
저는 올해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인 두딸아이의 엄마이며 마흔 한살인 주부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첫째 저와 같은 처지를 겪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이고 두 번째는 지금의 제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해 겨울은 큰 딸아이가 감기도 잘 낫지 않고 볼거리까지 걸려 고생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입학전 소집일이 있던 며칠 전이었습니다. 탁자에 이마를 부딪쳤는데 이마에 시퍼런 멍이 잘 없어지질 않고 얼굴로 내려왔습니다. 별의심 없이 며칠후 목욕을 시켰는데 온몸에 멍투성이가 되버렸습니다.
놀라서 소아과 병원에 갔더니 혈액에 이상이 있으니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혈액 채취 후 기다리는 동안 저의 상식으로는 백혈병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백혈병의 사촌격인 혈소판감소증이라고 치료해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생소한 병명에 두려워져 이곳 저곳에 문의를 해 보았지만 한결같이 종합병원에 가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종합병원에 갔더니 골수검사를 해봐야 확인 할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골수 검사를 했는데 검사시 아이의 외마디 소리에 저는 또 한 차례 주체 할수 없는 감정으로 울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혈소판감소증으로 판명을 받고 일주일을 입원 한뒤에 퇴원하여 일주일에 한번씩 통원 치료를 받았으며 진료를 받는 도중 최악의 경우 췌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된 가녀린 딸이 수술을 받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병원에 가서 문의를 해봤고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하지 않아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아이의 학교 생활 때문에 병원과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도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점차 좋아져 갔지만 제 자신이 이상한 생각과 행동이 진행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늘 회사일이 바빠 늦게 들어오곤 했는데 회사 출퇴근시 교통사고나 나지 않았는지 궁금하여 전화로 확인도 해보고 아이가 학교에 갔다 올때면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불안하여 마중나가고 나를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으며 시험하려 든다거나 의심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증세가 심해지자 남편은 종합병원 정신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심리테스트등 진단결과 아이에 대한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습니다.
처음 병원에 갔을때는 남편과 함께 갔었지만 약을 얼마 먹지 않아 혼자 다니게 되었고 일년이 다되 갔을 때 주위에서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약을 먹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완전한 정상 생활을 하게 되자 병원에 가기도 귀찮아지고 주위의 말에 솔깃해 담당 의사 선생님과의 상의도 없이 약을 끊어 버렸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회사일에 바빠서 경제 적으로 굳이 어려움도 없었고 아이의 병도 낫고 새로운 집을 장만하여 이사도 하고 저는 참으로 행복이라는 걸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등 이상한 생각과 행동 등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다시 남편과 함께 제가 다니던 병원으로 갔고 의사 선생님께 야단도 맞고 치료를 다시 했습니다. 이번에는 좀더 병이 깊어 우울증과 공황공포증이 생겨 삶의 의욕도 없어지고 불안하고 잠도 오지 않아 힘든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한의원을 지나가다 문득 유리창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다가 어리석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병원가기도 힘든데 보약도 먹어가면서 치료를 받으면 기운도 좋아지고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약을 먹자 약간 좋아졌던 증상들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겁이 난 저는 울면서 한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다시 치료받던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노발대발 하셨고 저는 그제서야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환자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먹자 정신적으론 이상이 없었지만 치료도중에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약을 먹으면 낮에도 잠이 오고 낮에 잠을 자면 밤에 잠이 오지 않고 몇날 낮밤을 자지 못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음식을 먹으면 토해 버리는 거식증에 몸이 허약해졌습니다.
변비가 심해 항문이 돌출되기도 하고, 손발이 떨리고 말도 생각대로 나오지 않고 행동도 느리는 등 때때로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여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만큼의 힘든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성으로 돌봐주는 남편이 있었고, 아이들 때문에 살아야 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차츰 회복되면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운동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는 말씀에 등산도 다녔고 레포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성격으로는 오래 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이웃의 소개로 작은 전자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얼마 동안 근무해 보니 손동작이 원만하지 못한 제 자신이 초라하여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상사에게 말하였고 그분은 저를 불러 계속 다니도록 배려를 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얻어 내가 할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조금이나마 월급을 받을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병의 회복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끔 격려 해주시는 사장님의 말씀이 힘이 되었고 제대로 못하는 일을 친절히 가르쳐 주는 동료들이 고마웠습니다. 차츰 숙련되어 가는 일들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따뜻한 우유를 먹어 보라는 등 조언을 해주는 그들의 관심 속에 저는 점차 좋아져 이천년 오월말엔 의사 선생님의 허락 하에 약을 완전히 끊고 자신감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이것이 꼭 육년만의 일입니다.
어떤 병이든 당황하지 말고 의사 선생님을 믿고 신뢰를 바탕으로 치료를 받는 다면 저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따뜻한 배려와 이해로 대해 주신 주위 사람들이 없었다면 치료 기간이 더 길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신승훈의 햇살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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