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찡한이야기(5)
정아름
2000.12.15
조회 35
하나님이 천사를 그렇게 오랫동안

지상에 내버려 두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한동안 하며

통곡을 하고 계신 어머니옆에 넋이 나간 채 서있었다.

그 다음 며칠동안 우리집은 무덤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음식은 커녕 물조차 드시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그렇게 떠난 형에게 한없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머니는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온몸에 열꽃이 피기 시작했다.

참 지독한 열병이었다.

급히 의사를 불렀지만 의사는 영양제를 놓아주면서

환자 스스로 일어나야지 별다른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산사람은

어쨌든 살아야할 거 아니냐고 설득했지만

어머니는 못듣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지쳐서 더우시지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누워만 계셨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고열에 시달리시고는 했다.

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의 생일날, 아니 형의 생일날에 맞춰

돌아올 수 없는 저 먼곳으로 형을 따라 가시려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어머니의 생일날이 형의 생일날이 돌아왔다.

그날 아침 눈을 떠보니 밤새 눈이 내렸었는지

온 세상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평소 친했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한분 두분 모여들었다.

아주머니들은 다들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어머니는 눈조차 감으신 채 아무말도 못듣는 것 같았다.

나는 거의 자포자기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그날 오후였다.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어느 동네아주머니겠거니 하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정말 태어나서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수백송이의 꽃들이었다.

이제껏 그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없었다.

배달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많은 꽃을

배달해 보기는 처음이라는 말을 했다.

하얀 눈밭위에 수백송이의 아름다운 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누가 보냈는가 보았더니........

바로 형.이.었.다.

어머니가 어느새 나오셔서 그 광경을 보시고 계셨다.

어디서 그런 기력이 다시 생기셨는지 애써 문틀에 의지하고 서 계셨다.

나는 형이 남긴 짤막한 생일축하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 어머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되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어머니 곁에서 함께 할겁니다."

어머니의 눈가에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조용히 번지기 시작했다.

언제 꽃배달을 시켰는가 보았더니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생일에는 절대 선물을 하지 않던 형이.....

꽃같은 것은 관심에도 없으셨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많은 아름다운 꽃들을

어머니의 생일 바로 자신의 생일에 보내온 것이었다.

그때 문득 마당에서 맴돌고 있는 참새 한마리를 보았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 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참새 한마리가 마당에 앉아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알았는지,

참새는 날갯짓을 파닥거리며 날아올라 마당을 한바퀴 휘 돌더니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나는 그렇게 높이 나는 참새를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득히 날아오르더니 하늘 끝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조금씩 기력을 다시 찾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의 눈빛이 바뀐 걸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항상 돈에 얽매이고

근심이 가시지 않던 어머니의 눈빛에

한없는 평화가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결혼하시고는

나가시지 않았던 성당을 다시 다니시기 시작하셨다.

원래 어머니는 결혼하시기 전에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다고 한다.

세례명인가 영세명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세례명이 ''아네스'' 였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참!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형이 선명회라는 단체에 가입하여

한 어린이를 돕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그 아이의 후원자는 바로 나다.

평생에 내가 누군가를 돕는 거 같은 걸 하게 될줄은 몰랐다.

한달에 한번씩 지로로 후원금을 부쳐주고는 한다.

그동안은 자동이체로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내가 누군가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내기가 일쑤였다.

그애하고 만나봤는데 그애 말이 형은

크리스마스나 그애 생일뿐만 아니라

새학기가 시작하면 학용품도 사서 부쳐주고

편지도 자주 써주고 그랬단다.

그 애는 형이 참 보고 싶다며 지금 형은 어디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차마 형이 죽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사정이 있어서 저 하늘 너머 먼 나라에 가 있다고만 말해 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뒤돌아 걸어가는데

뒤에서 그애의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그렇게 좋은 형과 한집에서 매일같이 사시니 얼마나 행복하세요"

바보같이 그제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형과 지낸 지난 이십여년간의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가를....

나는 왜그렇게 어리석었던가...

아이에게 무어라 대답을 해주어야 할텐데

갑자기 목이 메여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언제나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던

형의 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매일같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을 때.......

혼자서 방을 지키던 우리형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말까지 더듬어대던 우리형에게......

위로의 말은커녕 그보다 더 괴롭히기만 했던 나는

나쁜 동생이 아니던가?

그런 못된 동생을 위해서 매까지 대신 맞아주던 착한 우리형...

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돌아서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그럼 얼마나 행복했는데...

그렇게 좋은 형이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하단다."

하지만,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앞이 그만

부옇게 흐려지고 말았다.

드디어 전광판에 내 대기번호가 찍혔다.

나는 천천히 앉아 있는 은행원 앞으로 걸어가서

선명회 지로용지와 후원금을 내밀었다.

은행원은 사무적으로 도장을 몇번 쾅쾅 찍더니

영수증을 나에게 건네주었지만 영수증을 받아든 순간 나는.......

웬지 형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듯 해서

몇번이고 영수증 종이를 어루만져 보았다.

은행문을 나서니 토요일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나를 반겨주고 있다.

나는 솔직히 이 애한테 형이 했던 것처럼 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한번 열심히 노력해볼 생각이다.

그래야 천사의 동생이 될 자격을 갖게 될테니까.........

젝스키스:MISSING YOU 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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