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랑은 3살
장경옥
2000.12.15
조회 36
지금부터 우리의 만남과 결혼을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작년 그러니까 제가 26살때 지금의 제 신랑을 만났습니다. 어느날 하도 심심해서 유니텔을 하다가 보니 유니미팅이라는 새로운 코너가 생겼더군요. 한번 들어가보았죠. 심심하고 외롭기도 한 터라 남자들의 프로필을 보다가 기독교인이고, 취미는 검도와 요리(?)라는 약간의 촌스런 이름 이복재라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지요. 그런 즉 곧 답장이 왔습니다. 우린 2주동안 메일을 주고 받았고 얼굴은 모르지만 따뜻하고 서로 끌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게 되었답니다. 힘들고 지친 마음에 단비가 내리는 기분이었지요.
그리던 어느 토요일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구! 이게 왠일입니까!!! 소년같은 느낌의 글속의 그는 실제와는 전혀 딴판이었어요. 심하게 뚱뚱한 체구,중년남자같은 얼굴 그리고 여성스런 말투.. 정말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더구나 가장 싫었던 것은 손톱에 시커멓게 낀 때였지요.
하지만 며칠동안 메일을 교환했던 정도 있고 그래도 좋은 뒷모습을 보여야겠기에 밥을 먹자고 했죠. 그 사람과 첫번째 간 레스토랑은 유리창이 넘 더러워 밖이 잘 보이지 않고 군대군대 거미줄이 보이는 주인 빼놓고는사람한명 없는 그야말고 음식맛이 의심스러운 음침한 곳이었습니다. 정말 짜증나 있는 데 그 사람 뒤 벽 위로 기어가는 바퀴가 더욱 짜증을 돋구었지요.. 으악!!!
우리의 첫만남은 그것이 끝이었어요..
실망이 넘 커서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어떻게 되어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다 얘기했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느낌이 좋다고 하시며 자꾸 연락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싫다고 했는데 뭐가 그리 우리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저는 삐삐에다 간단히 ''저 잘 들어왔구요.. 오늘 즐거웠어요..'' 등등의 의무감 섞인 맨트를 남겼지요. 저 나름대로 멋있는 뒷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의기양양함도 가졌구요.. 삐삐의 별표를 누르고 전화를 끊자마자 연락이 온거예요..
그로부터 우리는 무려 3시간동안이나 서로의 얘기를 했고 서로 많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만 신랑은 나에게 대화를 맞추어 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더군요..사실 뻥도 좀 많았어요..
그로부터 우리는 일년간을 만났고 드디어 결혼... 딴딴따라..
그 때부터 우리 신랑은 3살 짜리 남자아이로 변해가고 있었어요..
말을 제 앞에서는 갓 말을 뗀 아이가 하듯 나름대로는 귀엽게(?) 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희동''이라며 이제부터는 희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더군요..(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아기 희동이 아시죠)
그리고 모든 사물에 나름대로의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밥상은 꼬꼬상, 큰 고릴라 인형을 고리, 기린 인형은 린이,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하니''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답니다..
희동이는 쇼핑을 너무 좋아해서 함께 대형마트라도 가면 장난감이나 인형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하나하나 다 만져보는 거예요..그것 뿐인줄 아세요.. 작은 간장종지며 예쁜 컵,쟁반에 밥그릇까지 보는 것마다 사고 싶어서 저를 무척 조른답니다
그리고 한 번 사고 싶은 것은 쇼핑 내내 저를 졸라서 결국 사고 집에 장식을 해 둔다거나 어느것은 꼭 안고 자요.. 심지어는 축구공까지도요.. 얼마전에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려고 갔는데 트리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다 예뻐서 뭘 집어야 하나 망설이는 거였어요.
상상해 보세요. 큰 거구의 남자가 장난감 전시대나 로버트 앞에서 넋을 잃고 보는 모습을요..
더구나 희동이는 문방구에 자주가요.. 그래서 조그만 로버트나 예쁜 지우개,연필깍이며.. 심지어는 길가다가 예쁜 바가지에 그릇들까지 산답니다
집에서는 막내라서 그런지 애교가 넘쳐 춤도 추고,고개도 갸우뚱 거리며 귀여운(?)표정, 가끔 속옷을 입고서 깡충깡충 뛰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에게 물어봐요. ''나 귀여워 하고''
일을 마치고 밤 늦게 들어오는 데도 피곤하지는 않은지 항상 교태넘친 표정과 말을 들으면 힘들었던 저도 웃음이 나온답니다..또한 가끔 저도 직장 때문에 힘들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교태가 두 배나 되어 결국은 피식 웃고 만답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되니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 하나 하고 싶어서 뭘 사줄까 라고 물어봤더니 글쎄
장난감 원격조정 자동차를 사 달라는 거예요.. 얼마냐고 했더니 20만원이라더군요.. 넘 비싸서 다른 것 갖고 싶은 것이 없냐고 했더니.. 글쎄
장난감 로버트 5종세트를 사달라고 해요.. 빨강,파랑,노랑등등의 로버트들을 함께 판대네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어디다 놀꺼냐고.. 집이 좁아서 놀곳도 없는데..
그랬더니 형광등에 매달아 놓는다고 하네요..
우리 3살자리 희동이 사실 나이는 내일 모레면 서른이랍니다..
그래도 사회생활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견하고 가끔 일때문에 밤 늦게 들어오면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도 저는 이런 희동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아기짓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쩌겠어요.. 제게 주어진 길인걸요.. 이제 곧 우리집은 장난감 로버트와 자동차 인형,갖가지 그릇등으로 가득 채워지겠지요. 그 만큼 우리 사랑 역시 채워져 갈껏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잠자리에서도 우리 희동이 이번 주에 또 마트가자고 조르내요.. 이번엔 또 뭐 사달라고 할 지 뻔하지만 그래도 이게 삶의 재미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스브라운: 비행기(飛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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