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찡한이야기(3)
정아름
2000.12.15
조회 28
형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그놈의 수술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 말로는 형의 수술비로 집한채 값이 날라갔다고 한다.

우리집은 가난했었다.

국민학교때까지는 일년에 두번씩 이사를 다녔다.

우리집을가지는 게 소원이었다.

거기다가 형의 수술비까지 대느라 언제나 쪼들렸다.

아버지가 벌어오시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돈놀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다.

쉽게 말해서 고리대금업이었는데 어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

채무자들을 어쩔 때는 참 심하다싶게 몰아부치시기도 했다.

부동산에도 손을 대셔서 지금 있는 집도 장만하시고 그러셨다.

어머니는 참 지독하셨다.

그리고, 너무 돈에 집착하고 그랬다.

극장도 한번 안가셨다.

극장가서 영화볼 돈 있으면 차라리

맛있는 걸 사먹는 게 낫다는 주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형은 항상 마음아파했다.

자기때문에 어머니가 저렇게 되셨다는 것이었다.

형은 어머니에게 누가 될만한 일은 한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런 형에게도

어머니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형은 거의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런 형도

돈을 쓰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길에서 거지를 보면 없는 돈에도 항상 얼마씩을 주고는 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었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저런 사람들 도와줘봤자

하나 소용없는 짓이라고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형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일르면

어머니는 형을 참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하셨다.

돈이라는 게 얼마나 피나게 모아야하는 건데

저러느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형에게 항상 무서운 세상에 대해서 말하시곤 했다.

그러시면서 , 말끝머리에는 항상 이런 말을 붙이셨다.

"너는 공부 못하면 시체야..."

형은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일까...?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형이 자기자신때문에

뭘 걱정하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곁에 항상 여자가 많아서 용돈이 부족하고는 했다.

좀 부족하긴 했지만 어렸을 적처럼 어머니 지갑을 뒤지진 않았다.

형이 나때문에 그렇게 모진 매를 맞았었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또 할 수 있겠는가?

그 다음해 겨울 우리집에 경사가 하나 났다.

형이 대학에 합격한 것이었다.

그런데, 형은 서울의 좋다하는 대학을 다 마다하고

지방에 있는 P공대를 지망해서 합격했다.

나는 참 알 수가 없었다.

서울이 얼마나 놀기가 좋은데

그 외진 데까지 찾아가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형이 서울을 떠나던 날...

나는 그때까지 어머니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보이시는 건 처음 봤다.

형이 떠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손수건이 눈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보기 싫어

그날은 혼자서 시내를 배회하다가 집에 돌아왔다.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형이 없어지니까

집안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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