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우리 동네에 젤루 쌈 잘하던 깡패같은 녀석이
형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녀석은 형하구 나이가 똑같았는데 질나쁘기로 소문난 녀석이었다.
나는 형에게 빚진 것도 있던 만큼 형을 위해서 그 자식과 싸웠다.
싸우다가 보니 그 녀석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애들싸움은 먼저 코피나는 쪽이 지는 것인지라
나는 기세등등하게 그 녀석을 몰아부치기 시작했는데
형이 갑자기 나를 말리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싸움이 재미있던 판에 형이 끼어들자 화가 버럭났다.
하지만, 지은 게 있던지라 아무말 하지 않고 물러 서고 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후로 그 깡패녀석과
형이 아주 친해지기 시작했다.
형은 사람을 아주 편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나는 형의 그런 면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면때문에 내가 어머니한테 귀여움을
더 못받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형과 그 깡패녀석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장롱밑에서 담배갑을 꺼내더니
형하고 나한테 권하는 것이었다.
그때 담배라는 걸 처음 피워 보았다.
형과 나는 콜록콜록 대며 피웠는데
그걸 본 그 깡패자식이 좋아라 웃던 기억이 난다.
형은 국민학교 5학년때 세번째 수술을 받았다.
그후로는 입술위에 반창고 붙이는 짓은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말더듬는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다시 형에게 버버리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TV에서 ''언청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얼마후에
그말이 바로 우리형과 같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희귀한 단어를 알게 된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형에게 버버리대신 언청이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을 들은 형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그말을 이제 알았구나?" 하며 웃어주었다.
웬지 그런 형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형에게 다시는 언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나보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다닐 적 어버이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안에서 소리없이 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편지같은 걸 읽으시면서 울고 계셨다.
어머니는 잠시 후 그 편지를 어느 조금은
초라하게 생긴 핸드백안에 넣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후
몰래 들어가 그 핸드백을 열어 보았다.
그안에는 조금 빛바랜 편지봉투부터
쓴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편지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 막 읽으셨던 듯한 편지를 꺼냈다.
형이 쓴 편지였다.
형이 매해 어버이날마다 썼던 편지를
어머니는 그렇게 모아놓고 계셨던 것이었다.
편지내용을 읽어보고는......
나는 왜 그토록 어머니가 형을 사랑하고,
형에게 집착하는지
(그때 나에게는 어머니의 형에 대한 사랑이 집착으로 느껴졌다)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형처럼 태어났다면........
나는 나를 그렇게 낳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했을텐데 형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자기가 그렇게 태어남으로해서......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셨을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또 위로하고 있었다.
어느덧 한해가 또 지나고 형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다음해 나도 중학교에 올라갔는데 한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형과 나는 다른 학교를 배정받았다.
형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항상 1등을 했다.
나도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항상 형보다는 조금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형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 형의 일기를 훔쳐보곤 했는데 형은 시인이었던 것 같다.
형이 지은 시는 이해하기가 참 쉬웠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처럼 복잡한 비유나 은유같은 것도 없었고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 읽어도
무슨 뜻인 지 알 수 있을 그런 시를 많이썼다.
그런데, 읽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이 맴도는 그런 시들이었다.
나는 형이 썼던 시들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형의 영향으로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쌍밤'' 이라는 문학써클에 가입하게 되었다.
연합써클이라 여학생들도 참 많았다.
한집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중학교는 형과 다른 곳을 다녔는데
고등학교에서는 형과 한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또 고등학교 때 갑자기 키가 부쩍 자라
형보다 10cm는 더 크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얼굴도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겨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는 형이 불쌍했다.
키도 작지, 그렇다고 얼굴이 잘생겼기를 하나, 말을 잘하나....
형을 보며 나는 무언가 우월감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거에 형은 전혀 무감각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느 맑은 가을날이었다.
집을 나서는데 참새 한마리가 대문앞에 죽어 있었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착한 일 한답시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왔다.
참새를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
그때 형이 대문을 나왔다.
나는 형이 칭찬을 해줄 것으로 알고 잔뜩 기대했는데
형은 모처럼 착한 일하려고 하는 나를 만류했다.
그러더니, 손수건을 꺼내 그 죽은 새를 담더니
집뒤의 야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늦을까봐 미리 집을 나섰다.
형은 그날 지각을 해서 운동장에서 기합을 받았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며 올라오는 형에게
참새는 어떻게 했냐구 물어보니까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새를 묻고나서 기도를 했다고 했다.
나는 내심 그깟 죽은 새한마리 땅에 묻고나서
기도는 무슨 기도냐며 그래도 궁금해
형에게 뭐라고 기도했냐구 물었더니
형은 슬픈 얼굴로 대답했다.
''만약 이 다음 어느생엔가......
내가 오늘의 너처럼 어느 집앞에 쓸쓸히 죽어 누워있으면
그때는 니가 나를 거두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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