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찡한이야기(4)
정아름
2000.12.15
조회 31
형은 자주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어버이날마다 선물을 들고 집에를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형은 어머니 생일날에는

선물을 하지 않았다.

꼭 어버이날 그렇게 선물을 들고 오고는 했다.

참 아직까지 말하지 않은 하나있는데

형하고 어머니는 생일이 같다.

어머니말로는 예정일을 보름이나 당겨서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생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띠까지 같았다.

형은 어머니 생일날 태어난 걸 항상

어머니에게 미안하게 생각했다.

즐거워야 할 어머니의 생일날

자신이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태어나

어머니를 슬프게 한 것이 그렇게 마음에 못이 되었었나보다.

그러고보니 형에게는 백일 사진도 없고 돐 사진도 없다.

언젠가는 형이 어버이날 어머니 선물로

비싼 지갑을 사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도 참 그 선물을 보시고는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지갑은 벌써 하나 있는데 가서 다른 걸루 바꿔올 수 없나?"

그런 말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형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후 그 지갑을 항상 곁에 지니며 다니셨다.

마치 형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형은 대학교 2학년 겨울에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끝이 없을 거같던 형의 수술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집안도 넉넉해져서 형의 수술비용이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수술 일자가 개강과 이상하게 맞물려서

형은 할 수 없이 한학기동안 휴학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형의 얼굴도 많은 수술 덕분인지 약간의 수술 자국을 제외하고는

어느새 정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형과 이십년 넘게 살아 오면서

형의 얼굴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편, 학력고사에 한번 낙방했던 나도

힘든 재수끝에 용케 Y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해 3월부터 8월까지 우리집은 참 행복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렸을 적

형이 매맞았던 사건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시며 형과 나를 바라보셨다.

형은 밤마다 어머니가 잠드실 때까지

어깨며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는 했다.

어머니는 나보다 형이 주물러 드리는 걸 더 좋아하셨다.

형이 안마를 해주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어머니는 사하라사막 한가운데라도

형만 옆에 있으면 행복해했을 것이다.

매일같이 웃음꽃이 피었다.

8월이 되자 형은 복학을 했다.

어머니는 떠나는 형을 보내기가 못내 아쉬웠던지

한학기 더 휴학하면 안되느냐고 형에게 말했다.

형은 어머니의 손을 꼭잡고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어머니곁에 있을거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포항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고 있었다.

날짜를 세어보니 조금 있으면

어머니의 생일이자 형의 생일이겠구나 싶었다.

어머니의 생일이 일주일정도 남았을 때

그날은 웬지 기분이 참 안 좋았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심하게 느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 말씀이 마치 심장이

위로 올려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셨다.

그리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셨다.

나는 어머님이 어디가 편찮으셔서 그러는가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형을 걱정하고 계셨다.

아무래도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초조하게 보내시던 어머니가

전화 한통을 받으시더니 금새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형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부리나케 형이 있는 포항으로 내려갔다.

의사선생님 말이 머리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소생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얀 시트를 가슴위까지 덮은 형이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형의 머리맡에 놓여진 오실로스코우프에는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 형의 맥박이 보였다.

어머니는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한걸음 한걸음 형에게 다가가셨다.

그러시더니 떨리는 두손을 모아 누워있는 형의 손을 꼭 잡으셨다.

그 순간이었다.

연약하게 뛰던 형의 맥박이 조용히 긴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태 기다리다가

그제서야 안심하고 떠나는 것처럼.

............

차도를 무단 횡단하던 어떤 어린 여자아이를

트럭이 덮치려는 순간 형이 그앞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여자아이는 팔을 조금 다치고 말았는데

형은 트럭에 치이고 나서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말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슬픔에 넋이 나가버렸는데

나는 그 순간 묘하게도 ''참 형다운 최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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